본문 바로가기

'이 X' 욕설에 술자리···실업팀 선수 열에 한명 "매일 매맞았다"

중앙일보 2019.11.25 12:00
지난 2월 출범한 인권위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연합뉴스]

지난 2월 출범한 인권위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연합뉴스]


인권위, 실업팀 성인선수 1251명 인권실태 조사결과 발표

“말로 선수한테 엄청 수치심을 줘요. ‘야, 너 일로와. 이 XX’, ‘이 X(여성을 비하하는 말)아’, ‘글러빠진 XX야’ 이런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20대 중반 선수)

 
“시합 끝나고 카메라가 집중됐을 때 감독님한테 뛰어와서 두 팔 벌려 가슴으로 안기지 않았다고 화가 난 거예요. 선생님을 남자로 보냐고, 왜 와서 선생님한테 가슴 대 가슴으로 못 안기냐고 그랬어요.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거라고. 어떤 지도자분들은 고등학생 여자선수였는데 술 마실 때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더라고요.” (30대 후반 선수)

 
“저 같은 선수들 꽤 있어요. 저도 우울증인 거 몰랐는데요. 심리상담을 하면서 제가 우울증인걸 알았거든요. 전 소속팀에서 자살시도를 해서 나왔어요…<중략>…최근 감독과의 갈등 이후 2번째 자살시도를 했어요. 1년 치 수면제를 받아서 다 복용했어요. 3일 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기 오게 된 거예요.” (20대 후반 선수)

 
성인 실업팀 선수들에 가해지는 신체ㆍ언어적 폭력과 성폭력이 학생 선수보다 심각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약 2주간 직장운동부를 운영하는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12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분석한 결과, 성인 선수들에게도 폭언ㆍ폭력이 일상화 돼 있었고 사생활 통제가 심각한 정도에 이르는 등의 인권침해 상황이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업선수 중 일부(8.2%)는 ‘거의 매일 매를 맞는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남성 선수의 경우 선배, 여성 선수는 코치가 주를 이뤘다. 피해 선수들의 절반 이상은 폭력을 당했을 때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부 선수는 부상 등을 적절히 관리받지 못하고 혹사당해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 시도에 이르기도 했다. 또한 부상 및 재활치료비를 온전히 선수가 떠안게 되기 때문에 은퇴 이후 부상치료비가 더 걱정된다고 언급한 경우도 있었다. 한 선수는 감독에게 아프다고 알렸지만 감독이 무시하고 경기 출전을 지시했고, 그 지시에 따라 아파도 경기에 나가는걸 반복하다 보니 선수 생활도 짧아졌다고 밝혔다.
 
성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돼있었다. 감독ㆍ코치 등 가해자들은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팔베개ㆍ마사지ㆍ주무르기를 시켰다. 신체의 크기나 모양, 몸매 등에 대해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강제 키스ㆍ포옹 등을 하기도 했다. 심한 경우 디지털성범죄에 해당하는 ‘신체부위 촬영’을 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한 선수는 시합을 일주일 앞두고도 감독이 부르는 술자리에 강제 동원됐다고 밝혔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합숙소 생활에 선택권이 없었고, 지도자와 한집에 살면서 사생활 침해를 겪기도 했다. 선수들 중 합숙소 생활 경험이 있는 비율은 86%로, 이들이 합숙소에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과다한 벌금이 부과되고 선배는 물론 지도자와 숙소를 공유했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경기가 없는 날에도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개인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20대 초반의 한 선수는 “합숙소 생활에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데, 10만원이나 100만원 대”라면서 “규칙은 언니들(선배)이 다 정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선수도 “지도자가 여자인 경우는 숙소에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으니까, 갑자기 들어와서 막 휘젓고 다닌다”며 “서랍장을 열어보면서 개인적인 물품까지 건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조사 결과 선수들이 근로자임에도 이에 상응하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선수들은 계약을 통해 임금을 받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연봉 액수도 모르는 등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음이 확인됐다”며 “스포츠 인권 교육은 물론 노동인권교육도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