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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도 돌아와서 투표···홍콩 민심은 '압도적 반중' 택했다

중앙일보 2019.11.25 11:52
홍콩 구(區)의원 선거가 25일(현지시간) 범민주 진영이 친중파를 깨고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중국이 홍콩 시위를 유혈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민심까지 진압하진 못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라며 “겸허히 시민의 의견을 경청해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반환 이래 가장 많은 294만 명 투표
해외 유학생도 홍콩 돌아와 반중 심판 참여
범민주 대승으로 홍콩 시위 동력 살아나
중국은 특혜 준 홍콩이 배신했다고 생각
홍콩 역할 축소하며 강경 대응할 전망
시위와 진압의 강 대 강 국면 계속될 듯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범민주 진영 인사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범민주 진영 인사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8개 선거구에서 당연직 구의원 27명을 제외한 452명의 민선 구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은 388석(85.8%)을 차지했다. 반면 친중파는 60석(13.3%)을 얻는 데 그쳤다. 4년 전 치러진 2015 홍콩 구의원 선거 결과 친중파 인사가 327석(72.3%), 범민주 진영이 118석(26.1%)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구도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올해 여섯 번째를 맞는 홍콩 구의원 선거는 지난 6월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에 대한 평가 성격을 가져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범민주 진영은 홍콩 민심이 자신들에 있다고 자신한 반면 친중파는 ‘침묵하던 다수’ 홍콩인이 시위 폭력성을 엄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 홍콩 구의회 선거 결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2019 홍콩 구의회 선거 결과.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범민주 진영의 대승이었다. 홍콩 중문대 정치행정학과 마웨(馬嶽) 교수는 선거 전 범민주 진영이 200석만 차지해도 선전이라고 전망했다. 구의원은 기층(基層) 서비스 업무를 주로 해 친중파가 전통적인 우세를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범민주 진영은 정치 신인이 많아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반면 친중파 후보는 대부분 오랜 기간 주민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탄탄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터라 범민주 진영이 아무리 잘해도 과반(약 240석)을 넘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홍콩 구의원 선거 결과는 범민주 진영의 예상 외 압도적인 승리로 나타났다. 사진은 홍콩의 한 개표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구의원 선거 결과는 범민주 진영의 예상 외 압도적인 승리로 나타났다. 사진은 홍콩의 한 개표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범민주 진영에 기대 이상의 승리를 안겼다. 홍콩 시위에 강경 진압으로 일관한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특구 정부를 심판하고자 한 홍콩 민심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선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선거엔 294만 명이 투표해 71.2%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였다. 4년 전 투표율 47%를 크게 웃돈다. 홍콩 명보(明報)는 이날 전체 투표율과 투표자 수에서 홍콩 반환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18~35세의 젊은 층 유권자가 12.3% 증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청년 세대의 투표 참여가 범민주 진영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해외 유학생마저 홍콩으로 돌아와 한 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개월 간 거리에서 투쟁했던 반정부 시위대가 투표로 반란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미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도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현 정부를 심판하려는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라며 "홍콩 정부와 중국 베이징 공산당에 보내는 강력한 메세지”라고 평가했다.
 
범민주 진영의 대승으로 홍콩의 민주화 시위 동력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범민주 진영에 속하는 공민당은 승리를 거둔 32명의 구의원 후보자 모두 현재 경찰의 포위하에 있는 홍콩 이공대로 달려가 시위대를 격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민주 진영은 특히 내년으로 예정된 입법회 의원(국회의원 격) 선거에서도 현재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지속적인 민주화 시위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고 나아가 홍콩특구 행정장관 직선제를 쟁취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위원회 1200석 중 117석이 구의원들 몫이어서 행정장관 직선제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인 294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인 294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선거 결과로 중국 중앙 정부의 대응 방식이 약화되진 않을 전망이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도쿄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의 특별행정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해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에 고무돼 홍콩 시위가 재발할 조짐이 보일 경우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을 재확인한 셈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개표가 마무리된 후 ‘홍콩특별행정구 6차 선거 종료’라는 제목의 6줄짜리 짤막한 기사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이 “폭력을 저지하고 난동을 제압해 질서를 회복하는 게 홍콩이 당면한 긴박한 임무”라고 보도했다. 
  
선거 참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캐리 람 장관에 대해선 재신임 의사를 다시 밝혔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람 장관의 직위를 재검토할 것이냐는 질문에 "중국 중앙정부는 람 장관이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를 이끌고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서방 세력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중국 스파이가 홍콩 대학에 침투해 공작 활동을 했다는 호주 언론의 보도와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3개월 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구금됐을 당시 고문당했다는 BBC 보도 등을 거론하며 “서방의 일부 세력이 지난 1주일 동안 전력을 다해 반대파(범민주 진영)의 선거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서울=오원석 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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