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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시각각] 기자와 검사는 만나야 한다

중앙일보 2019.11.25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기자를 ‘질문하는 직업’이라고들 한다. 20년 경험해보니 대체로 맞는 말이다. 몰라서 묻고, 이게 맞냐고 묻고,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냐고 묻는다.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될까’라고 망설여질 때도 일단 질문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에 이끌린다.
 

기자·검사의 티타임 다음달 폐지
피의자 인권 이유 언론 감시 위축
‘민주적 통제’라면 티타임 계속돼야

질문은 아픈 상처로 남기도 한다.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소환됐을 때의 질문으로 괴로워 한 기자도 있었다. 그는 버스에서 내린 노 전 대통령에게 “왜 면목 없다고 하셨나요”라고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면목 없는 일이죠”라고 답했다. 뇌물 의혹에 ‘면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전직 대통령의 의중을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 기자는 자책감에 빠졌다. 미국의 전설적인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1920~2013)의 말을 빌려 뒤늦게 그 후배를 위로하고 싶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고.
 
질문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끈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책 『워터게이트』는 이런 머리말로 시작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비밀 정보를 제공한 백악관과 그 밖의 다른 곳에 있는 대통령의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들이 없었다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없었을 것이다.” 두 열혈 기자의 질문에 응답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거대한 권력의 음모가 밝혀졌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건 서울중앙지검이 검찰 출입기자와의 ‘티타임(정례브리핑)’을 다음 달부터 없앤다는 소식 때문이다. 법무부가 지난달 말 ‘형사 사건 공개 금지 훈령’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무부는 검사와 기자의 티타임이 ‘피의 사실 흘리기’ ‘망신주기식 수사’ ‘여론 재판’ 등의 ‘적폐’를 양산했다고 보고 있다. 형사 사건은 ‘공개 금지’가 원칙인 것에 더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공개할 때에도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 공보관이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보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한다. 검사와 기자의 대화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수십명의 기자들이 검찰 핵심 간부와 Q&A를 벌이는 ‘서초동 티타임’은 치열하고 아슬아슬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처음 티타임에 들어섰을 때 엘리트 검사(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에게 애송이 취급을 당할까 걱정했던 기억도 있다. 이후엔 ‘언제쯤 그가 쩔쩔매는 질문을 할 수 있을까’라는 승부욕이 커졌다. 소속 언론사를 대표한다는 부담감, 타사 기자를 견제하는 수 싸움 등으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티타임에는 정의감과 승부욕, 사명감과 야심이 뒤엉켰다.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 “특정 언론에만 흘리느냐”는 항의와 “검찰은 확인해 준 적 없다” “피의 사실 공표죄를 조심하라”는 반박이 부닥쳤다. 치열한 경쟁은 양날의 칼이 되곤 했다. 수사 허점을 파고 들기도 했지만, 특종이 결국 검찰의 논리와 주장에 맞춘 퍼즐이 됐다. 피의자 인권은 본의 아니게 후순위로 밀렸다.
 
그런 점에서는 피의자의 인권 보호라는 방향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기자와 검사의 만남 자체를 절멸하는 것은 공익에 반(反)한다. 정당하고 공정한 검찰 수사는 독려하고 권력 내부의 음모를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와 검사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것이 현 정권의 치부를 감추려는 ‘큰 그림’에 따른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그토록 강조하는 정부가 ‘민의의 CCTV’ 역할을 하는 티타임을 없애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헬렌 토마스 기자는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고 했다. 서초동의 티타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뜨거운 의심’과 ‘차가운 판단’이 대치하는 현장을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게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이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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