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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태풍 뚫고온 넉달, 상처 없겠나”

중앙일보 2019.11.25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 대항조치로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3품목의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중앙포토]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 대항조치로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3품목의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중앙포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생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정부는 국산화 성과를 강조했지만, 업계는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재고 쓰며 버텨, 소재 의존 여전
‘지소미아 유예’에 긴장 안 풀어
“한·일정부 하루빨리 타협해야”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4곳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고, 올해 3~4분기 실적도 피해를 본 것이 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당초 이들 기업은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소재를 규제 품목에 올리면서 비상이 걸렸었다. 정부 측은 ‘일본의 규제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업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A기업 관계자는 “항해를 떠난 배가 손님들을 무사히 싣고 항구로 잘 돌아왔다고 해도, 순풍 속에 온 거랑 태풍을 뚫고 온 거랑 같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B기업 관계자 역시 “이번 국면에서 재고를 무리하게 아껴 써야 했고, 물품도 우회적으로 구해야 했다. 그 사이 비용 증가가 왜 없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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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일본은 여전히 3개 품목을 규제하면서 개별 품목을 건별로 허가해주고 있다. C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은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심정이다. 언제 정통으로 한 방을 맞을지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실제 업계에선 ‘급소 바로 옆’을 찌르는 일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규제 기준을 세분화해 한국 반도체의 주력인 D램 메모리와 낸드 플래시 제조에 필요한 소재는 타격을 피해 가도록 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처럼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필요한 소재와는 규제 대상의 세부 특성을 다르게 했다.
 
한국의 주력 제품에 필요한 소재·부품을 꿰고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급소를 찌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일례로 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정에 필수적인 섀도마스크는 일본의 두개 업체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어, 수출 규제가 내려질 경우 한국 OLED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성능과 품질이 높아질수록 소부장에 일본 제품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설명이다.
 
D기업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100% 국산화는 불가능하고 경쟁은 치열한데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하루빨리 한일 정부가 타협을 통해 수출 규제를 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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