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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넘어선 日규제…업계 “태풍 뚫고 왔는데 상처 없겠나”

중앙일보 2019.11.24 16:43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 대항조치로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3품목의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중앙포토]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 대항조치로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3품목의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 [중앙포토]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생산 차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정부는 국산화 성과를 강조했지만, 업계는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수출규제에도 3·4분기 생산 차질 없어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4곳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이로 인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고, 올해 3~4분기 실적도 피해를 본 것이 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당초 이들 기업은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소재를 규제 품목에 올리면서 비상이 걸렸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정부 측은 ‘일본의 규제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산업부가 ‘2019년 새해 업무 보고’를 통해 내놓은 소부장 국산화가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강력하게 추진됐다는 얘기다. 산업부에선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준 셈”, “일본 없이도 문제없다는 걸 보여준 쾌거”란 말이 나온다.  
 

언제 걸릴지 모른다…“러시안룰렛 하는 심정”  

 그러나 업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기업들은 익명을 전제로 어려움을 쏟아냈다. A 기업 관계자는 “항해를 떠난 배가 손님들을 무사히 싣고 항구로 잘 돌아왔다고 해도, 순풍 속에 온 거랑 태풍을 뚫고 온 거랑 같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출 규제 국면(태풍)에서 크고 작은 손실이 있었다는 얘기다. 
 
 B 기업 관계자 역시 “이번 국면에서 재고를 무리하게 아껴 써야 했고, 물품도 우회적으로 구해야 했다. 그 사이 비용 증가가 왜 없었겠나”라고 했다.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일본은 여전히 3개 품목을 규제하고 한국을 백색 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개별 품목을 건별로 허가해주고 있다. 기업들로선 ▶중국의 가파른 추격 속에 ▶기술 및 양산 경쟁을 벌이면서 ▶필요한 소재·부품·장비 조달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C 기업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심정이다.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언제 정통으로 한 방을 맞을지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덜 아픈 곳’ 찔러 본 일본…‘급소’ 노릴까 노심초사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강 장관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협정 종료 '조건부 연기'와 관련한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수출규제 해소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강 장관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협정 종료 '조건부 연기'와 관련한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수출규제 해소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실제 업계에선 ‘급소 바로 옆’을 찌르는 일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규제 기준을 세분화해 한국 반도체의 주력인 D램 메모리와 낸드 플래시 제조에 필요한 소재는 타격을 피해 가도록 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처럼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필요한 소재와는 규제 대상의 세부 특성을 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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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일수록 日 부품 필수…자화자찬할 때인가

 한국의 주력 제품과 그에 필요한 소재·부품을 꿰고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급소를 찌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일례로 소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정에 필수적인 섀도마스크는 일본의 ‘다이니폰 프린팅’과 ‘토판 프린팅’이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어 수출 규제가 내려질 경우 한국 OLED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경우 성능과 품질이 높아질수록 원천기술과 소재·부품·장비에 일본 제품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설명이다. 
 
 D 기업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100% 국산화는 불가능하고 경쟁은 치열한데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하루빨리 한일 정부가 타협을 통해 수출 규제를 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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