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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워즈니악이 직접 만든 애플 컴퓨터도 있다…100만명이 찾은 넥슨컴퓨터박물관

중앙일보 2019.11.24 05:00

100만명 관람한 넥슨컴퓨터 박물관 최윤아 관장 인터뷰 

애플 I 컴퓨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특정 부품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중, 넥슨컴퓨터박물관 관계자는 스티브 워즈니악(오른쪽)이 2012년 제주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직접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 [사진 넥슨]

애플 I 컴퓨터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특정 부품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중, 넥슨컴퓨터박물관 관계자는 스티브 워즈니악(오른쪽)이 2012년 제주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직접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 [사진 넥슨]

용호의 권, 세이부 축구, 라이덴, 런 앤 건…. 지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듯 1990년대 오락실 풍경이 펼쳐진다. 오락실에서 사용했던 조이스틱과 4 버튼·6 버튼 입력키도 그대로 재현돼 있어 시작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시절 그 감성이 바로 소환된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만든 애플Ⅰ컴퓨터에서부터 현대 솔로몬, 삼보 트라이젬, 최신 노트북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년간 출시된 완제품 PC를 볼 수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저장 장치인 카세트 테이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와 페르시아의 왕자, 창세기전 등 유명 게임 정품 패키지도 전시공간 한쪽을 차지한다.
 
넥슨컴퓨터 박물관 지하에 있는 체험공간. 세이부 축구, 라이덴, 런앤건, 배구 등 과거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을 그때 그 느낌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제주=박민제 기자

넥슨컴퓨터 박물관 지하에 있는 체험공간. 세이부 축구, 라이덴, 런앤건, 배구 등 과거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을 그때 그 느낌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제주=박민제 기자

정보기술(IT) 초창기에서부터 지금까지 40~50년간의 세월을 박제해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제주시 노형동 소재 넥슨컴퓨터박물관이다.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과거인 탓에 오히려 더 흔적을 찾기 어려운 컴퓨터와 게임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2013년 7월 개관한 이곳은 최근 누적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445㎡의 소규모 박물관 치고는 이례적 성과다. 모든 게 빨리 바뀌는 시대, 휘발돼버리기 쉬운 각종 소프트웨어까지 원본 그대로 모아 체험 가능한 형태로 전시한 덕분이다. 
 
지난 20일 박물관에서 만난 최윤아(51) 관장은 “컴퓨터와 게임 역사의 절반은 소프트웨어인데 디지털 특성상 원본 그대로 보존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박물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양피지에 쓴 글 날아가듯 소프트웨어도 휘발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 관장 [사진 넥슨]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 관장 [사진 넥슨]

소프트웨어 보전이 왜 어려운가.
“다들 반영구적이라 알고 있지만, 정품 CD라 해도 10년이 넘어가면 데이터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 코딩된 프로그램이 중간중간 깨진다. 한줄이라도 사라지면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CD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PC게임 중 디스켓 형태로 돼 있는 것은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구동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전시하는 게 우리 원칙이다. 소프트웨어는 체험할 수 없으면 일반 유튜브 보는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실제 작동하는지가 중요했다.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기인데 역설적으로 제대로 된 예전 데이터를 구하기는 더 어려웠다.”  
 
유명 소프트웨어는 개발한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나.  
“초기 IT기업들은 자료를 보존하고 소장하는 개념(아카이브)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받아와도 실행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 기업 관계자들 만나면 계속 디지털 자료는 수시로 백업에 백업에 백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모든 매체가 영구적이진 않다. 양피지에 글을 기록하는 것도, LP판에 음악을 담는 것도, CD에 소프트웨어를 저장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세월이 지나면 데이터는 휘발된다.”
 

바람의나라 복원하기도 

넥슨컴퓨터 박물관의 오픈 수장고에는 과거 수십년간 나온 컴퓨터들이 전시돼 있다. 실제 모두 구동가능한 컴퓨터다. 제주=박민제 기자

넥슨컴퓨터 박물관의 오픈 수장고에는 과거 수십년간 나온 컴퓨터들이 전시돼 있다. 실제 모두 구동가능한 컴퓨터다. 제주=박민제 기자

넥슨의 첫 게임 ‘바람의 나라’는 2014년 복원했다.
“‘바람의나라’는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다. 당연히 넥슨이 만드는 박물관에서 플레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CD로 보전해놓은 1996년 버전이 작동이 안 되더라. 서버에 있는 건 업데이트에 업데이트해서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과거 개발자들이 뭉쳐서 복원하게 됐다.”
 
왜 컴퓨터·게임 박물관이 있어야 하나.
“국립박물관에서 빗살무기토기·금관을 보면 감동이 크지만 그 유물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이 과거에 토기를 잘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근현대사 박물관을 가면 내가 어렸을 때 탔던 포니차 등을 보며 감동하지 않나. 그건 나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보통 예술 작품을 얘기할 때 '장소 특정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장소에 가서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우리 전시를 ‘관람객 특정적’이라 생각한다. 게임을 주로 해온 30~40대에게 우리 전시품이 주는 동질감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런 경험을 널리 공유하고 싶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Ⅰ도 전시 

스티브 잡스(왼쪽)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자신들이 만든 애플Ⅰ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다.(왼쪽) 넥슨이 지난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37만4500달러에 낙찰받아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애플Ⅰ컴퓨터. [중앙포토] 제주=박민제 기자

스티브 잡스(왼쪽)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자신들이 만든 애플Ⅰ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다.(왼쪽) 넥슨이 지난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37만4500달러에 낙찰받아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애플Ⅰ컴퓨터. [중앙포토] 제주=박민제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품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에 만든 애플Ⅰ컴퓨터다. 모니터와 키보드가 달린 현재 PC의 원형을 보여준 제품이다.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7만4500만 달러(약 4억여원)에 낙찰받았다. 제대로 작동되는 오리지널 제품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품을 제각각 구해 복각도 시도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이 안 돼서 고민에 빠졌었다. 2012년 스티브 워즈니악이 제주도에 다른 행사 때문에 온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다. 워즈니악이 한참 뜯어보더니 지금은 구할 수 없는 핵심 부품이 없어서 작동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케이스에 사인만 받아왔다.”
 

김정주 대표, 종종 도슨트 역할 

2013년 7월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은 개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복원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날 쇼케이스에 참석한 바람의나라 초기 개발 멤버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2번째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4번째가 김진 작가, 5번째가 김정주 대표다.

2013년 7월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은 개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복원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날 쇼케이스에 참석한 바람의나라 초기 개발 멤버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 2번째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4번째가 김진 작가, 5번째가 김정주 대표다.

김정주 NXC대표는 박물관에 자주 오나.
“김정주 대표가 제주에 있을 때나, 손님이 찾아올 경우, 간헐적으로 일년에 1~2회 정도 전시 내용을 설명해주는 도슨트 역할을 한다. 또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있으면 직접 구해서 박물관 직원에게 체험해보라고 가져다주기도 한다. 최근에도 구글 VR 데이드림뷰를 기증했다.”
앞으로 박물관의 모습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한다. 지금까지 참여한 학생이 10만명이다. 진로 교육만 3만명이 받았다. IT기업이 하는 일, 코딩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을 가르쳐주는데 호응이 정말 좋다. IT가 계속 변하듯이 우리 박물관도 변할 것이고, 교육 프로그램도 계속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제주=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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