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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돈으로 커피 마시자 맘충"···노동시장 속 82년생 김지영

중앙일보 2019.11.23 12:50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통계로 본 30대 후반 남녀 

김지영은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그는 모처럼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옆 벤치에 앉은 한 직장인 남자가 말했다. "맘충(엄마를 벌레로 비하한 표현) 팔자가 상팔자야. 일은 안 하고 남편이 번 돈으로 커피나 마시지" 김지영은 이후 우울증에 걸려 약물치료를 받게 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경제 통계적 의미는 크다. 남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했지만, 여성은 육아를 위해 '상용직'을 포기하고 비경제활동인구(직장을 다니지 않고, 앞으로도 구할 계획이 없는 사람)에 편입된다. 남자는 계속 상용직 지위를 유지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격차'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억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상징하는 30대 후반(35~39세)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경제적 지위로 살고 있을까. 본지는 20일 통계청·고용노동부의 고용·소득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주인공 김지영(이하 ♀)과 그를 비하한 남성(이하 ♂) 간 가상 대화로 엮었다.
 

고용률 떨어지고 실업률 불쑥 오른 30대 후반 남자, 왜

: 저는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일 할 능력이 있어도 취업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저는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불립니다. 소득이 없으니 남편이 벌어오는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새 생명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맘충'이라니요.

 

: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해선 안 될 말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당신 또래 남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란 점입니다. 남자 나이 30대 후반이면 한창 일할 때이지만, 경제활동참가율(10월 기준)은 2017년 94.9%에서 올해 93.2%로 1.7%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수)도 93%에서 90.7%로 크게 떨어졌고, 실업률은 1.9%에서 2.7%로 불쑥 올랐습니다. 제조업 등 민간 경기가 부진해 지면서 또래 남성들의 일자리도 계속 줄고 있는 겁니다.

35~39세 남자 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5~39세 남자 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자리 개선된 30대 후반 여자, 또래 남자와 비교하면

 : 그래도 30대 후반 남성 고용률이 90%가 넘는다는 것은 10명 중 9명은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30대 후반 여성의 고용률은 과거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올해로 61%입니다. 남성에 크게 못 미칩니다.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성을 기다리는 일자리 자체가 적다는 의미입니다.

35~39세 여자 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5~39세 여자 경제활동참가율·고용률·실업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규직은 급감, 비정규직 급증한 남자…'고용의 질' 나빠졌나

 : 그렇게 된 것이 남성 탓은 아니지요. 30대 남성의 '고용의 질'도 빠르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정규직은 30대 여성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줄어든 반면, 남성들은 무려 5.5% 줄었습니다. 대신 비정규직은 여성들이 7.9% 증가하는 사이, 남성은 16.9% 늘었습니다.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만 양산되다 보니, 실업 상태로 구직 활동을 하는 남성도 많습니다. 30대 후반 여성들의 올해 실업률은 2.2%이지만, 남성들은 그보다도 못한 2.7%입니다.

30대 남녀 정규직·비정규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0대 남녀 정규직·비정규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육아로 직장 포기' 여자 114만 vs 남자 1만  

 : 그렇다고 남성이 여성처럼 육아·가사 부담으로 직장을 포기하진 않지요. 올해 육아에 전념하는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114만4000명에 달합니다. 남성은 고작 1만명 만이 같은 이유로 직장을 포기합니다. 이러고도 양성이 평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직장을 포기하고 육아 전선에 나서는 남성이 적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육아로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남성이 2년 전(2017년)에는 4000명이었지만 올해 1만명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여성은 반대로 육아 전념자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5년 전(2014년)만 해도 140만2000명에 달하던 육아 전념 여성 비경제활동인구가 올해에는 114만4000명에 불과합니다. 소득은 또 어떻습니까? 2015년에는 남성 월급의 62.8%에 그쳤던 여성들이 지난해에는 66.6%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남성의 경제 상황은 나빠지고 있지만, 여성들은 반대로 좋아지고 있지 않나요?  

고용률·실업률·경제활동 참가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고용률·실업률·경제활동 참가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남성 대비 여성 평균 월급여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남성 대비 여성 평균 월급여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자 소득 수준은 개선…남자에 비하면 어떨까  

 : 언제까지 여성은 육아만 하고 직장과 꿈을 포기해야 합니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출하는 고학력 여성이 늘면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여성의 평균 소득은 남성의 7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지난해 한국의 30대 후반 여성 고용률(OECD 집계 기준 60.7%)은 미국(74.6%)·스웨덴(90.5%)·독일(81.4%)·일본(74.8%) 등 13개 주요 선진국 가운데 꼴찌였습니다. '82년생 김지영'들의 일자리와 소득 수준은 점점 개선되곤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더딥니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한국 사회를 '남성 우위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전국 성인 15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한국의 30대 남녀가 생각하는 성 평등 인식은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 사회가 '남성에 더 우호적'이라 응답한 30대 남성은 33%에 그쳤지만, 30대 여성은 48%에 달했다. 세계 40개국 평균은 48%였다. 반면 한국 사회가 '여성에 더 우호적'이라 응답한 30대 남성은 27%였지만, 여성은 11%에 그쳤다. 이 역시 40개국 평균은 17%였다. 30대 한국 남성은 또래 여성보다 한국 사회가 남성에 덜 우호적이고 여성에는 더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고용률·실업률·경제활동 참가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고용률·실업률·경제활동 참가율.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보육 인프라 확충하고 남성 중심 노동 기득권 해체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면 여성 일자리 유지와 저출산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보육 인프라 확충에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가 놓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남성 중심의 노동 기득권을 해체하고 여성이 고용될 수 있는 유연성도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선 시간제(파트타임)가 많아 여성 고용률을 높은 유럽·일본 사례를 한국에 단순 적용하려다 보니 양질의 여성 일자리가 생길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며 "정부는 여성의 경력이 끊기지 않고 보육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육 시설 확충 등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30대 여성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공기업·은행 등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무기계약직 등으로 전환하면 고용이 늘 여지가 사라진다"며 "정부는 당장의 일자리 '기득권'을 지닌 사람보다 노동시장 밖의 '비경제활동인구'를 줄이려는 방향에서 정책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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