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소미아 파국 막았지만…강제징용 해법 ‘뇌관’은 여전

중앙선데이 2019.11.23 00:37 662호 3면 지면보기
22일 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종료 유예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 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종료 유예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 MIA·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고 일본은 수출규제 협의를 약속했지만 정부 안팎에선 발표 직후부터 “뇌관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압박으로 지소미아 종료라는 파국은 막았는데 한·일은 여전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임시모델 균형’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지소미아 효력 유지로 일본은 손에 ‘현찰’을 쥐었지만 한국은 수출 관리 정책 대화에 나서겠다는 ‘어음’만 받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효력유지 ‘현찰’ 받았지만
한국, 수출정책 대화 ‘어음’ 받은 셈

한국 “WTO 제소 중단은 잠정조치
수출규제 철회돼야 제소 철회할 것”

강제징용 문제 해법 도출 될 때까지
일, 협의하되 수출 규제 유지 가능성

이날 양국 발표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엇갈렸다. 우선 지소미아와 수출규제 조치의 연계 문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지소미아 종료 효력 정지의 뜻은 일본이 우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잠정적으로 지소미아 종료를 정지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강제징용 문제가 안 풀리면 수출 규제도 못 푼다는 일본의 연계전략에 우리는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를 연결하는 전략으로 맞받았고 그 결과 (일본의) 연결고리를 깼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그는 “오늘 발표문에 강제징용 내용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지소미아 문제도 완전히 해결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이날 “말할 것도 없이 지소미아와 수출관리 문제는 별개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 측은 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중단은 ‘잠정 조치’일 뿐 ‘완전한 철회’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일본이 조치를 취한)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본다”며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 한국을 다시 포함해야 하고,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기체 불화수소)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철회돼야만 지소미아 연장이라든지, WTO 제소를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측과 협의를 시작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이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산성 무역관리부장은 “한국에서 외교 루트를 통해 WTO 제소 프로세스를 중단한다고 통보받았다”며 “한국 측이 수출관리 문제에 대한 개선 의사가 있다고 판단해 과장급 준비를 거쳐 국장급 협의를 진행해 양국 수출관리에 관해 재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이다 부장은 “(준비 단계인) 과장급 회의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면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3가지 품목에 대한 개별심사 허가는 (양국 협의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산성 관계자는 또 한국이 조건으로 내건 화이트리스트 복귀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그룹 A(화이트리스트 국가)에 되돌리는 것을 전제로 협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유예를 발표하는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유예를 발표하는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산성은 또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중단 발표와 같은 시각(오후 6시)에 맞춰 기자회견을 가지면서도 “타이밍이 우연히 맞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 간에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며 “(지소미아 연장과 함께) 한·일간 수출관리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은 ‘양국의 동시 조치’를 강조했지만, 일본은 여러모로 ‘한국과 협의’ 수준에 그친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은 기존 주장대로 강제징용 관련 해법이 마련될 때까지 시간을 끌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번 발표에 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시한이 없어서다. 정부는 이와 관련, 유예 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그러기 위해선 조약 개정이 필요하고 일본의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으로선 한·일 갈등의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이 도출되기 전까지 협의하는 모양새는 취하되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수 있단 얘기다.
 
이번 협의 과정에서 강제징용 해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강제징용 문제도 금방 해법이 보이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연내 합의 가능성에 대해 “연내로 전망할 순 없다. 가급적 빨리 되면 좋겠다”라고만 답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날 중앙SUNDAY에 “정부가 고민 끝에 일본에 공을 넘겼지만 오늘 발표대로라면 일본이 만족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조건부 유예인 지소미아를 바로 종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부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설명처럼 강제 징용-수출 규제-지소미아 ‘3종 패키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게 아닐 수도 있단 얘기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서울=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