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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혁신 플랫폼 갖춰 매년 60% 교체…AR 제품도 내놔 불황 모른다

중앙선데이 2019.11.23 00:21 662호 14면 지면보기
다음주에 한국을 방문하는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끊임 없는 혁신으로 유기적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사진 닐스 크리스티안센]

다음주에 한국을 방문하는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는 ?끊임 없는 혁신으로 유기적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사진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LEGO)의 세계에선 상상과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누구든 레고 블록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세울 수 있어서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레고 스토리를 갖고 있다(Everyone has their Lego story)’는 말이 있을 정도다. 브랜드 가치만도 75억7100만 달러(약 8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지난해 평가됐다. 장난감 회사 가운데 세계 최고다. 이런 레고를 요즘 이끄는 인물이 바로 최고경영자(CEO) 닐스 크리스티안센(53)이다. 그가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 법인의 경영과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중앙SUNDAY가 e메일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CEO
‘내일의 건설자’에게 영감 주자 원칙
품질·안전 최우선, 세계 부모들 신뢰

80년대 MIT와 협업해 디지털 접목
AI 기술도 기존 레고 모델에 도입
물리적 세계·온라인 연결고리 역할

레고가 1932년 덴마크에서 탄생했다. 입맛이 순식간에 변하는 고객(어린이)을 상대하는 장난감 시장에서 80년 정도나 생존했다.
“2032년이 되면 설립 100년이 된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유기적 성장(M&A로 몸집을 불리는 방식이 아닌 자체 제품 개발과 판매로 이룬 성장)을 이뤄냈다.”
  
창립 87년, 브랜드 가치 8조8000억원
 
비결이 궁금하다.
“목적(비전)이 분명하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란 근원적인 질문에 우리는 아주 분명한 답을 갖고 있다. ‘내일의 건설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원칙이다. 덕분에 세계 부모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구체적인 비결을 알고 싶다.
“레고엔 혁신 플랫폼이 있다. ‘레고 시스템 인 플레이(LEGO System in Play)’이다. 이 시스템 덕분에 끊임없이 혁신할 수 있다. 해마다 제품 포트폴리오 60%를 교체 가능한 이유다.”
 
회사 역사가 긴 만큼 여러 고비나 변곡점이 있었을 텐데.
“2000년대 초 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있다. 이때 핵심 경쟁력과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레고 구성원들은 각자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회사들과 협업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고 있다. 미국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찍은 레고 영화가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이런 협업은 2000년대 초 위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크리스티안센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레고는 1999~2003년에 위기를 맞았다. 미국 경제전문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거의 파산 지경이었다”고 묘사할 정도의 위기였다. 원인은 지나친 제작 비용이었다. 레고는 비용과의 전쟁을 치러 위기에서 벗어났다.
 
장난감의 상징 가치

장난감의 상징 가치

요즘엔 어떤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는가.
“오늘날 디지털은 레고 구성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화두다. 기업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1980년대 미국 MIT대학 미디어랩(Media Lab)과 협업했다. 그 결과 나온 혁신이 바로 마인드스톰(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모델)이다. 이는 레고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요즘 레고 모델 가운데 디지털 요소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레고 놀이, 과학적 재능 키워줘
 
요즘 한국 어린이들은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어린이들이 레고 블록을 손으로 만지며 느끼며 즐기는 놀이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동시에 어린이들이 아주 부드럽게 아날로그적(물리적)인 장난감과 디지털(가상) 세계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요즘, 디지털 요소가 촉감을 느끼며 하는 레고놀이를 강화해줄 것으로 본다. 가상 세계와 디지털 영역 사이에 알맞은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은 레고가 앞으로도 계속해야할 일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주면 좋겠다.
“올해 내놓은 레고 히든사이드(Hidden Side)엔 증강현실(AR)이 적용됐다. 어린이가 손으로 만든 모델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캐릭터가 뜬다.”
 
AI(인공지능) 시대는 어떻게 대처할 건가.
“AI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다. 우리는 이미 AI 요소를 기존 레고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AI 기법을 이용해 문자로 이뤄진 조립설명을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오디오로 변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신기술을 도입할 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점은 레고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어린이들을 어떤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최근 5년간 레고작품

최근 5년간 레고작품

장난감 시장 분석가인 리처드 고트리브 글로벌토이엑스퍼트 대표는 중앙SUNDAY와 전화통화에서 “레고뿐 아니라 하이엔드(고급)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들이 맞고 있는 리스크 가운데 하나는 인구 노령화”라며 “고가 장난감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의 어린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령화가 디지털과 AI에 버금가는 위협요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안센은 “레고를 접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아시아 지역에 여전히 많다”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요즘 플라스틱 오염이 이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레고를 살 때마다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레고 블록은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니다. 대를 이어서 놀 수 있는 제품이다. 게다가 우리는 석유에서 나온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만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탕수수에서 나온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미 레고 제품 1~2%가 사탕수수에서 나온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한국 시장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모로 선진화한 시장이다. 디지털이 한국 사회와 어린이들의 놀이문화에도 통합돼 있다. 한국 어린이들은 레고 블록뿐 아니라 디지털 장난감을 갖고 노는 데 아주 자연스럽다. 레고 히든사이드가 한국에 소개된 이후 아주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의 테스트 베드(신제품 1차 출시국)인 경우가 많은데.
“레고 입장에서 보면 세계 모든 나라가 독특함을 갖고 있다. 모든 나라의 시장이 테스트 베드다. 게다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비평가를 갖고 있다. 바로 어린이들이다.”
 
손오공 레고

손오공 레고

한국시장에 잘 맞는 제품이 있을 듯하다.
“한국이 중시하는 혁신과 노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과학적 재능을 키워주는 레고놀이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이는 놀이에 초점을 맞춘 올해 누리과정(3~5세) 개편안과 관련이 있다.”
 
강원도 춘천에 세우려다 중단된 레고랜드는 언제쯤 문을 열까.
“레고그룹이 레고랜드를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멀린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레고랜드를 건설·운영한다.”
 
멀린은 영국 회사다. 레고의 지주회사가 멀린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춘천 레고랜드는 2011년부터 추진됐다. 하지만 각종 소송과 문화재 발굴 등의 우여곡절 탓에 아직 착공도 안 된 상태다.
 
매출액이 2017년 이후 정체된 듯하다.
“2018년 회사 조직과 성과를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올 상반기 매출액은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4% 정도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크리스티안센은 2017년 10월 CEO로 취임했다. 레고 매출액이 51억 유로(약 6조6000억원)에서 47억 유로로 약 7.8% 정도 줄어든 해였다. 미국 경제매체인 CNBC는 “재고가 너무 많이 쌓여 2017년에 헐값에 처분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크리스티안센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셈이다.
 
장난감 시장의 글로벌 리딩 기업을 이끄는 CEO로서 받는 스트레스 등은 어떻게 해소하는가. 
“쉬는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최근 성인이 됐다. 덕분에 나만의 취미 시간을 좀 더 갖게 됐다. 내 취미는 골프다.”  
 
실직한 목수, 나무 장난감 만들어 시작
레고 첫제품

레고 첫제품

“레고 설립자는 목수였다. 그는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다.”
 
레고그룹 최고경영자(CEO) 닐스 크리스티안센(Niels Christiansen)의 말이다. 실제 설립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이 처음 만든 장난감이 바로 바퀴 달린 나무 선반 위에 앉은 목제 오리(사진)였다. 자작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오리엔 시대적인 아픔이 엿보인다. 설립자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한 1932년은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이 최악의 순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바람에 설립자의 일감이 확 줄었다. 인생 2막으로 장난감 제작을 시작한 셈이다.
 
설립자는 장난감 제작을 시작한 지 2년 뒤인 1934년 레고(LEGO)라는 상표를 달아 목제 장난감을 팔기 시작했다. 레고는 ‘잘 놀다’를 뜻하는 덴마크의 말 ‘LEG GODT’의 줄임말이다. 현재 창업자 가문은 덴마크에서 흔한 성인 크리스티안센과 구분하기 위해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란 성을 쓴다. 레고그룹 CEO인 닐스 크리스티안센은 성의 발음이 설립자 가문과 같지만, 설립자 가문 후손은 아니다.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가문은 1980년대 지주회사 KIRKBI그룹을 세워 레고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KIRKBI그룹은 레고그룹 지분 75%,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KIRKBI 회장은 설립자의 손자인 켈트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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