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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몰락 후 앵그리버드…스타트업 새 신화 넘치는 열정

중앙선데이 2019.11.23 00:02 662호 30면 지면보기

핀란드 ‘슬러시 2019’ 박람회

지난 2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막한 ‘슬러시 2019’에서 스트라이프 창업자 존 콜리슨(왼쪽)이 마커스 빌리그와 대담하고 있다. 박신홍 기자

지난 2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막한 ‘슬러시 2019’에서 스트라이프 창업자 존 콜리슨(왼쪽)이 마커스 빌리그와 대담하고 있다. 박신홍 기자

지난 21일(현지시간) 오전 10시 핀란드 수도 헬싱키 메수케스쿠스 컨벤션센터. 카운트다운 숫자가 0이 되자 모든 불이 꺼지고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곧이어 휘황찬란한 네온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대 한가운데 자리 잡은 DJ 두 명이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을 틀자 1000여 명의 관객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박람회인 ‘슬러시(Slush) 2019’ 오프닝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작년 2만 건 상담, 15억 달러 펀딩”
전 세계 창업·투자자 등 2만 명 몰려

삼성·구글·MS·포르쉐 등 부스 북적
한국 스타트업 30곳 시연회도 인기

올해 행사에만 2만5000명 넘게 참가했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3500개 스타트업과 2000여 명의 투자자, 1000여 명의 교수·연구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록콘서트장 뺨치는 음악, 환호성
 
이날 오프닝쇼에서도 슬러시 관계자가 “지난해 슬러시에 참가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대기업·투자자들과 2만 건 이상의 상담 실적을 올렸으며 이후 1년간 총 15억 달러를 펀딩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자 우렁찬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곧이어 두 명의 오프닝 대담이 마련됐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스트라이프 창업자 존 콜리슨과 우버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볼트 창업자 마커스 빌리그가 남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마주 앉아 혁신에 대한 열정과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장면이 대형 스크린에 생중계됐다.
 
행사장은 강연장 3곳을 제외하곤 모두 스타트업 부스로 채워져 있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포르쉐 등 글로벌 대기업들도 자체 부스를 마련하고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일대일 상담에 나섰다. 삼성 부스는 구글·화웨이·스트라이프 부스와 행사장 한가운데 나란히 위치해 특히 인산인해를 이뤘다.
 
‘슬러시 2019’ 행사장 내 삼성 부스. 카페에 줄이 길게 서 있다. 박신홍 기자

‘슬러시 2019’ 행사장 내 삼성 부스. 카페에 줄이 길게 서 있다. 박신홍 기자

참가자들의 발길을 모으려는 유치 경쟁도 치열했다. 삼성은 아예 부스 안에 카페를 차렸고, 클라우드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인 PWC는 구름이란 단어에 착안해 솜사탕 기계를 갖다 놓고 즉석에서 솜사탕을 나눠줘 큰 인기를 모았다. 삼성 부스 책임자인 새라 피터센은 “카페를 차린 덕분에 최소 6000명 이상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의 상담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트라가 마련한 한국관도 인기를 끌었다. 6년째 참가하는 올해 행사에는 30여 개 국내 스타트업이 참여해 별도의 시연회를 여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섰다. 김연재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은 “한국이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어 해외 투자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국내 스타트업에는 슬러시가 세계 무대에 노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550만 명의 중소국가인 핀란드가 세계적인 스타트업 강국이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노키아의 몰락이 계기가 됐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책임질 정도로 절대적 위상을 가진 기업이었다. 하지만 노키아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핀란드 경제도 2012~2014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치열한 내부 논의 결과 노키아라는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 해결책으로 스타트업이 제시됐다. 그 결과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와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슈퍼셀,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 등 세계적인 스타트업이 잇따라 탄생하게 됐다.
  
슈퍼셀·스포티파이 등 세계적 스타트업 탄생
 
이날 행사에도 로비오 공동 창업자인 피터 베스터바카가 깜짝 출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베스터바카는 “로비오가 52번째 개발 만에 성공한 작품이 바로 앵그리버드였다”며 “끊임없는 도전과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이 젊은이들의 창업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스터바카는 2008년 슬러시를 처음 만든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애초엔 조그만 규모의 창업자 사교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앵그리버드가 대박이 나면서 2011년 헬싱키 대학생들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이후 슬러시는 제2, 제3의 앵그리버드를 꿈꾸는 대학생 창업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박람회로 성장했다.
 
핀란드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현장에서 만난 대학·기업·정부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선택과 집중’을 꼽았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울창한 자작나무숲을 최대한 활용해 나무에서 추출한 자연 소재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첫째였다.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는 기술을 집중 개발하는 전략을 택했다. 여기에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을 가미하자 경쟁력이 배가됐다.  
 
얀 라이네 알토대 혁신 담당 부총장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스타트업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관·산·학 3자의 긴밀한 협업이 밑바탕이 됐다”며 “앞으로도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에 주력해 최적의 스타트업 환경을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헬싱키=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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