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승욱 도쿄총국장
시위대가 홍콩 이공대에 남겼다는 오싹한 글귀를 SNS에서 봤다. 홍콩을 보며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말의 무게감도 새삼 느끼게 됐다. 중국이란 ‘공룡’을 앞에 두고도 서로 치고받느라 정신없는 한·일관계의 현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과 중국을 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생각은 일본 재계 관계자가 들려준 2013년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그해 여름 지인들과의 골프 라운딩 때 얘기다. 동반자들은 아베 총리에게 “대국적 관점에서 한국이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 격차가 더 커지면 동아시아는 중국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안고, 미국이 뒤에서 백업하는 구조로 가야 중국을 막는다”라고 했다.

글로벌아이 11/22
이미 6년 전 아베 총리는 한국을 ‘골포스트 옮기는 나라’로 낙인찍었다. 국민 여론이 철저히 통제되는 중국을 ‘더 좋은 파트너’로 평가하며 ‘대국끼리의 담판’을 강조했다. 2015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흐지부지되고, 대법원 징용 판결까지 나오면서 그의 생각은 더 굳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최근 한국 대신 중국에만 공을 들인다.
하지만 중국의 민낯이 생생히 드러난 홍콩 시위 앞에서도 아베 총리는 태연할 수 있을까. 중국이 지역 헤게모니를 완전 장악한 뒤에도 일본을 지금처럼 대접해줄까.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외교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 한·미·일 공조를 통한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이해했다면 한·일관계를 이 지경까지 내몰지 않았을 것이다. 참혹한 홍콩 사태 앞에서 두 정상이 정신을 번쩍 차렸으면 한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