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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프로 15년차 황연주 “조용히 사라지지 않겠다”

중앙일보 2019.11.22 00:04 경제 7면 지면보기
지난 시즌부터 현대건설 주전 라이트 공격수에서 백업으로 밀린 황연주. 그러나 ’조용히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지난 시즌부터 현대건설 주전 라이트 공격수에서 백업으로 밀린 황연주. 그러나 ’조용히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한때 그는 다 가진 선수다. 하지만 이젠 웜업존의 대기 선수다.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꽃사슴’ 황연주(33·현대건설). 찬란했던 시절은 지나갔어도, 그는 여전히 배구 코트를 지키겠다는 마음이다.
 

여자배구 통산득점 1위, 우승 5회
부상·체력 저하 탓에 위력 떨어져
백업 선수로 뛰면서 많은 것 배워
시즌 뒤 계약 끝나도 거취는 미정

지난 시즌(2018~19시즌) 황연주는 주전 라이트 공격수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이 그의 자리에 외국인 선수 마야(스페인)를 영입했다. 그는 지난 시즌 20경기(전체 30경기)에 주로 교체 출전해 160득점에 그쳤다. 경기당 8점꼴이다. 늘 득점 톱10에 이름을 올렸는데, 지난 시즌 25위로 밀려났다. 이번 시즌에는 입지가 더 좁다. 21일까지 현대건설이 치른 9경기 중 5경기에, 그것도 전부 교체 출전했다. 시즌 20득점. 2005년 프로 데뷔 시즌부터 선발 출전이 당연했던 그에겐 낯선 나날이다.
 
현대건설은 2010년 자유계약선수(FA)황연주를 흥국생명에서 데려왔다. 라이트 공격수인 그를 위해 외국인 선수도 줄곧 레프트를 뽑았다. 2010~11시즌 뛴 케니(콜롬비아)는 원래 라이트였는데, 레프트로 돌렸다. 그 시즌 황연주는 현대건설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그의 공격력은 외국인 선수가 무색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때리는 후위 공격이 그의 전매 특허였다.
 
 2010-11시즌 프로배구 올스타전 여자부 경기에서 MVP를 수상한 황연주가 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2010-11시즌 프로배구 올스타전 여자부 경기에서 MVP를 수상한 황연주가 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고운 외모로 별명이 ‘꽃사슴’이었던 황연주는 외모와 달리 무서운 공격수였다. 그리고 우승 제조기였다. 우승컵을 다섯 차례나 들어 올렸고, 남녀 통틀어 처음 5000득점(2017년)을 기록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쳐 통산 5988득점, 이는 여자부 역대 1위다. 하지만 2007년 무릎 수술을 받았고, 2012년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뒤로 위력이 떨어졌다. 30대에 접어들자 체력도 떨어졌다. 가공할 위력이 점차 사라졌다. 이 감독은 지난 시즌 마야를 영입하면서 그를 레프트로 돌려봤다. 공격을 전담해온 그의 수비는 엉성했다. 더구나 배구에서 왼손잡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라이트 또는 세터. 레프트 공격수 역할은 어색했다. 결국 이번 시즌 마야의 백업이 됐다.
 
황연주는 19일 IBK기업은행전에서 1세트 초반부터 마야를 대신해 나왔다. 2세트까지 5점을 올리며 나름 활약했다. 하지만 3, 4세트를 합쳐 3점에 그쳤다.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가던 현대건설은 2-2로 쫓겼다. 이 감독은 5세트 황연주를 빼고 2년 차 정지윤을 투입했다. 황연주는 “점프를 안 하다가 갑자기 많이 하려니 뇌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며 “주전들이 실전처럼 랠리 연습을 하는 동안 개인 훈련만 하다 보니 실전 적응력이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찬사만 받던 그의 솔직한 고백이 낯설었다. 그는 “백업이 되고 보니 뒤에 있던 선수들 마음을 알겠더라. 밖에서는 안 되는 부분이 보이는데, 막상 코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마야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황연주는 당분간은 자주 코트에 설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기회지만, 그는 “마야가 낫는 게 우선이다. 외국인 선수 자리를 메우는 건 한두 경기일 때 가능하다. 마야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겠다”고 말했다. 그는 4월 현대건설과 연봉 1억원에 1년짜리 FA 계약을 맺었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그의 거취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확실한 건 그에게 아직은 배구 코트를 떠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조용히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떤 선수인지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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