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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정현 테니스 계보, 샛별 권순우가 잇는다

중앙일보 2019.11.22 00:04 경제 6면 지면보기
“저는 주니어 시절에 실력이 부족했어요. 세계 100위 안에 들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죠. 그런데 지금은 제가 또래 중에 제일 잘해요. 어릴 때 못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세계 100위 안에 든 유일한 선수
순발력 앞세운 플레이가 주무기
랭킹 81위 달성, 스스로 10점 만점
내년 호주오픈 메이저 첫 승 목표

권순우는 시즌이 끝난 뒤 머리를 염색했다. 그는 ’주니어 시절에 외국 선수에게 느꼈던 두려움을 없애려 염색했다“고 소개했다. 강정현 기자

권순우는 시즌이 끝난 뒤 머리를 염색했다. 그는 ’주니어 시절에 외국 선수에게 느꼈던 두려움을 없애려 염색했다“고 소개했다. 강정현 기자

권순우(22·CJ)가 한국 남자 테니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는 올 1월 235위에서 시작해, 8월 100위 안에 진입했다. 한국 남자 테니스 사상 세 번째다. 앞서 이형택(43·은퇴), 정현(23·한국체대)이 두 자리 수 순위에 들어갔다. 이형택은 24세였던 2000년 11월에, 정현은 19세였던 2015년 4월에 100위 벽을 돌파했다. 이형택은 36위, 정현은 19위가 최고 순위다. 권순우는 9월 기록한 81위다. 21일 현재 88위에 올라 있다.
 
21일 서울 구로구 귀뚜라미 크린 테니스 코트에서 권순우를 만났다. 그는 “제가 100위 이내 순위로 투어 대회에 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체격도, 실력도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 김천 모암초 4학년 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보통 7~9세에 입문하는데, 늦은 편이다. 게다가 입문 당시 키도 1m50㎝ 정도로 작았다. 어머니 정은미 씨는 “초등학교 때 항상 반 아이 중 앞쪽에 섰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전부 까치발을 하고 있을 정도로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다”고 전했다.
 
호주오픈 4강에 올랐던 정현(23)과 홍성찬(22), 이덕희(21) 등이 주니어 시절 두각을 나타낼 때, 권순우는 미미했다. 정현은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했고, 홍성찬은 2015년 호주오픈 주니어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했다. 이덕희는 2014년 주니어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 100위 안에 든 한국 선수는 권순우뿐이다.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린 정현은 7월 코트에 복귀했다. 6승 8패의 성적을 거둬 현재 세계 129위다. 홍성찬이 508위, 이덕희가 251위다.
 
권순우. [연합뉴스]

권순우. [연합뉴스]

권순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키가 쑥쑥 컸고, 지금은 1m80㎝다. 지금도 키가 자란다고 한다. 키가 작을 때 순발력으로 승부하기 위해 한 템포 빠른 네트플레이를 익혔는데, 지금은 그게 주무기다. 그는 “포핸드샷을 한 다음 네트플레이 구사하는 것에 특히 자신있다”고 말했다.
 
2015년 프로에 데뷔한 권순우는 2017년 챌린저 대회에서 두 차례 준우승했다. 이때 세계 랭킹을 300위대에서 168위까지 끌어올렸다. 안정적인 기본기 위에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파워를 더하자 공에 힘이 실렸다. 주니어 때는 주목받지 못해 주눅 들었지만, 점점 이기는 경기를 많아지면서 자신감이 상승했다.
 
올해는 윔블던과 US오픈 등 메이저 대회 2개를 포함해 7개 투어 대회 본선에 출전했다. 그중 지난달 벨기에에서 열린 유러피언오픈을 제외한 6개 대회는 힘든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했다. 전적은 7승7패고, 시즌 상금은 28만6064달러(약 3억4000만원)다.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등 나머지 4개 투어 대회는 예선 탈락했다.
 
권순우의 매니지먼트사인 스포티즌 김평기 부사장은 “한 단계 낮은 챌린저 대회를 다니면서 랭킹포인트를 딸 수 있었지만, 투어 대회에서 직접 부딪혀 보는 쪽을 선택했다. 예선 경기를 치러 본선에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1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순우는 “올해 나 스스로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다. 100위 안에 드는 게 목표였는데 이뤘으니까”라며 웃었다.
 
권순우는 올해 4월 국가대표 출신 임규태 코치를 영입한 뒤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임 코치는 “(권순우의) 장점을 살리는 훈련에 중점을 뒀다. 실전 경기처럼 다양한 전술 상황에 맞춰 훈련하면서 경기력이 많이 좋아졌다”며 “아직 서브를 넣는 위치나 방향 등이 단조롭다. 좀 더 다양하게 자신 있게 넣을 수 있게 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우는 25일 다시 라켓을 잡는다. 대회 출전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2주씩 훈련할 예정이다. 그는 “내년 1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본선이 열린다. 메이저 첫 승을 거두기 위해 열심히 체력 훈련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기계적으로 “톱 10”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다.  
 
“제 진짜 목표는 10년 동안 100위 안에 계속 있는 겁니다. 한 번 반짝이기보다 오래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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