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행 42조 신탁시장 잃을라

중앙일보 2019.11.22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불똥이 은행 신탁으로 튀었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뿐 아니라 신탁도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이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보고 판매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지만 금융당국은 강경한 입장이다.
 

그동안 주가연계 신탁상품 판매
당국의 DLF 대책으론 규제 대상
은행 “공모ELS 편입 신탁 허용을”
금융위, 원칙 못 바꾼다는 입장

은행업계에 따르면 주요 은행 자산관리(WM)·신탁 담당자들이 공모 상품의 신탁은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20일 금융당국에 건의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으로 신탁 상품 판매의 문이 닫힐 수도 있어서다.
 
은행권 파생결합상품 잔액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은행권 파생결합상품 잔액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번 DLF 대책의 ‘뜨거운 감자’는 신탁이다. 신탁은 고객 재산을 은행에 맡기면 보수를 받고 운용·관리해주는 상품이다. 문제는 신탁이 특정 개인에게 1대 1 계약 형태로 판매된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사모’의 범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고난도 사모펀드처럼 최대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신탁은 은행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 판매를 규제하면 신탁을 통한 우회 판매가 나타날 수 있어 함께 규제했다”고 말했다.
 
은행은 다급하다. 신탁 판매가 제한되면 사모펀드 규제보다 타격이 크다. 그동안 은행권은 주가연계증권(ELS)을 편입한 주가연계신탁(ELT)을 주로 판매했다. ELS는 대부분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를 웃돌기 때문에 ELS를 편입한 신탁(ELT) 역시 고난도 상품에 포함된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 ELT 판매액은 42조8000억원(잔액 기준, 파생결합증권신탁(DLT) 포함)에 이른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모 DLF(4조3000억원)의 10배 이상 규모다. 은행이 42조원 시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셈이다.
 
ELT 판매가 제한되면 소비자도 영향을 받는다. 소비자가 은행에서 ELS에 투자하고 싶으면 수수료를 더 내고 주가연계펀드(ELF)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은행에서 곧바로 가입할 수 있는 ELT와 달리 ELF는 운용사를 한 단계 더 거쳐 운용되므로 소비자는 운용사 보수 등 비용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은행 대신 증권사로 거래 창구를 옮겨도 되지만 판매 채널이 은행에 비해 적기 때문에 고객들은 번거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2009년 판매를 시작한 뒤 10년간 원금 손실이 난 적이 없는데 고난도 상품으로 묶여 판매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 측은 공모 ELS가 기초자산인 신탁은 허용해달라고 요구한다. 신탁에 편입되는 기초자산이 공모인지, 사모인지에 따라 규제를 달리 해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위 입장은 확고하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21일 “은행은 신탁을 통한 기존 영업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건 곤란하다”며 “고난도 파생상품 신탁을 금지해도 은행은 규제를 우회할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규제에 맞춰서 판매상품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원금 손실률이 19.9%여서 고난도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 신탁은 여전히 판매할 수 있다”며 “신탁이 아닌 자산운용사를 통한 공모펀드 형태로 은행이 판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염지현·한애란 기자 yjh@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