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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100세 현역 김형석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늙는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중앙일보 2019.11.21 00:25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건강만 하다면 60세 이후가 제일 행복하다는 얘기가 있다. 자녀교육, 조직생활 다 마무리하고 더는 남 눈치 안 보고 부질없는 욕망에도 벗어나 진짜 나를 위한 삶이 가능하다는 거다. 반면 장수 시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일하고 싶은데 할 일은 마땅치 않고 돈도 걱정이니 장수가 재난처럼 여겨진다. 현실이 된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느냐가 새로운 사회적 화두다.
 

100세 현역 철학자 김형석
60~80세가 인생의 황금기
정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에는 안 늙어

1920년생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00세 시대의 아이콘, 롤모델이다. 100세에도 현역이다. 강연, 출판, 글쓰기 등으로 젊은이 못잖게 바쁘다. 지난해만 165회 강연을 했다. 평생 80여 권의 저작을 냈는데 올해만 3권을 냈고 한 권은 마무리 작업 중이다. 신문 고정 칼럼도 2개 쓰고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휴머니즘에 바탕한 그의 행복철학은 예전에도 반응이 좋았지만, 90이 넘어서 더 인기가 치솟았다. 그는 “70대 청중이 가장 많다”면서도 “요즘에는 30~40대도 많고, 고등학교에서도 강의 요청이 있다”고 했다.
 
그는 25일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더, 오래 콘서트’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앞서 지난 14일 만난 그는 한 시간 넘는 인터뷰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늙는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며 웃었다.
 
김형석 교수는 강연시장의 스타다. 그의 지혜를 구하는 팬들이 많다. 14일 그가 다니는 서울 연희동 원천교회에서 인터뷰했다. 김상선 기자

김형석 교수는 강연시장의 스타다. 그의 지혜를 구하는 팬들이 많다. 14일 그가 다니는 서울 연희동 원천교회에서 인터뷰했다. 김상선 기자

# 인생에 은퇴는 없다 = 그의 지론은 ‘인생은 60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다. 스스로도 연세대를 정년퇴직할 때 모든 게 끝난 기분이었지만 삶은 달랐다. 노력하니 75세까지는 계속 성장했다. 제일 좋은 글, 제일 좋은 책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몸이 말을 안 들을 뿐 정신적으로는 90, 100세까지도 안 늙는 기분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60~80세가 제일 행복하고, 생산적이고 좋은 나이”였단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 궁금했다. “어머니 소원이 제가 스무살을 넘기는 거였고, 중학교에 못 갈 정도로 몸이 약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건강에 신경 써야 했고, 신체적 절제를 했더니 50살에 남들과 건강이 비슷해졌죠. 그리고 이제는 더 오래 살고 있고요.” 특히 나이 들면, 타고난 것보다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건강관리는 50대 중반부터, 수영과 자전거가 좋다”고 추천하는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수영장에 가고, 하루 50분씩 걸으며, 집에서 1·2층을 숱하게 오르내린다. 예민한 성격이지만 잠을 잘 자고, 피곤하면 휴식 대신 운동으로 피로를 푼다. 아침은 사과와 우유 등 하루 3끼를 잘 챙기는 게 기본. 10여 년 전, 23년간 투병한 아내와 사별 후 그는 홀로 산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게 최상의 인생이다. 정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일해야 안 늙는다 = 건강과 젊음의 비결은 일이다. 건강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니 건강하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고 하니 “70~80이 되면 일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봉사도 일이다. 그에게 늙는다는 것은 “활동과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것”. 노인끼리 있으면 더 좁아진다. 김동길 교수가 백선엽 장군 등과 함께 ‘백세클럽’에 초대했지만 모임에 잘 안 나가지는 이유다. 물론 물리적 나이가 전부는 아니다. 나이는 젊지만 마음은 늙은 ‘늙은 젊은이’는 더 문제다. ‘늙은 젊은이’보다 ‘(마음이) 젊은 늙은이’들이 많아야 세상이 건강하고 나라도 잘산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일, 공부, 취미, 봉사 등. 그중 딱 세 가지만 뽑는다면 “일, 여행, 연애”다.
 
일은 젊음 뿐 아니라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세상 모든 일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삶의 목적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할 때 나도 진짜 행복해진다. 자칫하면 ‘꼰대’가 되는 시대, 노인이 사회와 젊은이들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뭐라도 존경받을 점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일상 속에서 식당 종업원, 버스 기사에게 늘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손주에게 모범을 보인다고 생각해요. 사실 교통부 장관보다 더 내 삶에 행복을 주고 중요한 이가 버스 기사 아닙니까. 그의 직업적 자존감을 제가 지켜줄 수 있고, 이렇게 타인을 내가 높이면 나도 그로부터 존경받게 됩니다. 이걸 망각할 때 갑질문화라는 게 생겨나죠.”
 
한국은 ‘분노사회’이기도 한데, 그는 주변에 100세 넘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욕심 없고 화를 안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사랑이 있는 교육과 인간관계가 부족한 사람들이죠. 사랑 있는 교육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늙어서도 돈 걱정인 이들에 대한 조언도 했다. “돈이 중요하지만 인간다운 삶의 방편일 뿐 목적이 아니죠. 모두가 이런 생각을 공유해야 합니다. 소유가 삶의 전부인 사람이 있는 한 가난은 절대 사라지지 않거든요.”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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