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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 국방장관의 미군 철수 관련 언급, 예삿일 아니다

중앙일보 2019.11.21 00:17 종합 30면 지면보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80분 만에 결렬되고, 미국 국방부 장관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심각한 사태가 지난 19일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일곱 시간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50억 달러를 요구하는 미국 측은 80분 만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한국 측 제안이 우리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담금 부족하면 주한미군 줄일 수도
미 의회 상대로 한 적극적 설득 필요

같은 날 필리핀을 방문 중인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말에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예측하거나 추측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경우에 따라 감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발언은 ‘주한미군 철수는 있을 수 없다’던 미국의 기존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에스퍼 장관은 지난 15일 한국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고 전투태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힌 장본인이다. 정황상 더 많은 분담금을 받아내기 위해 ‘금기어’로 여겨지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슬쩍 꺼낸 게 틀림없다.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현재 정부는 미국과는 분담금 문제와 함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는 두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가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를 깨는 바람에 주한미군이 더 위험해졌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시각이라면 한국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통적 한·미 동맹을 금전적 손익으로만 따지려는 미국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안보 차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이는 크나큰 잘못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이 실망스럽지만, 변할 가능성이 없다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실질적 타개책을 찾는 게 옳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 ‘방파제론’을 앞세워 일본 측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반감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 이제라도 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하든, 아니면 후폭풍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 특히 의회 내에서 한·미 동맹을 소중히 여기는 인사들의 힘을 빌리는 것도 또 다른 방안이다. 외교 당국은 의회와 싱크탱크 등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들로 이뤄진 방미단도 제 몫을 해야 할 것이다. 지소미아에 관한 정당 간 이견이 있더라도 이번만큼은 분열하지 않고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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