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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협상 T리스크 “미국팀, 트럼프 보라고 협상 박찼다”

중앙일보 2019.11.21 00:05 종합 6면 지면보기
초유의 한·미 방위비 협상 결렬을 놓고 미국 측의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협상 시작 80분 만에 협상장을 나가버린 미국 측은 “한국과의 입장 차”를 결렬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미국 행정부 내부 기류에 향후 한·미 관계에 대한 계산까지 담겼다는 분석이다. 외교가에선 미 협상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려고 초장부터 무리수를 뒀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미 측의 ‘50억 달러 청구서’는 전례가 없고 근거도 명확지 않다. 미 정부 당국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미 정부도 50억 달러 무리수 알지만
대선 전 성과 낼 시범케이스 한국뿐
“지소미아 종료 땐 공세 더 세질 것”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0억 달러’에 꽂히면서 협상팀은 어떻게든 액수를 맞춰야 할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건 항목이 아니라 총액이라는 것이다. 11차 SMA 협상 시작 전부터 한·미 협상팀 내부에선 ‘T리스크’(트럼프 리스크)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제임스 드하트 미 방위비 협상 대표는 한국에서 증액을 끌어내고,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도 만족시키는 임무를 맡은 셈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 액수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미 정부 인사들도 안다”며 “이번 결렬은 미 협상팀이 ‘이만큼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을 트럼프에게 보여주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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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미 협상팀이 협상장을 나온 뒤 언론에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1시간25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도 결렬 카드를 사전에 염두에 뒀다는 방증이다. 드하트 대표는 입장문에서 “우리는 필요하다면 우리 입장을 조정(adjust)할 준비도 했다”며 한국에 책임을 돌렸지만, 협상장에선 50억 달러 주장을 양보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 외교·안보 소식통은 “드하트 대표가 외부에 낸 취지와 협상장 언급이 달랐다”고 말했다.
 
내년 11월 대선 전 방위비에서 성과를 내려면 한국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미 측은 갖고 있다고 한다. 한·미 간 협정은 올해로 종료된다. 과거엔 협상이 길어져 시한인 연말을 넘기기도 했다.
 
미국은 일본에도 분담금을 현재의 약 3배인 80억 달러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미·일 방위비 협정은 2021년 3월까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에도 분담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은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는 약속을 8개국만 지키고 있다는 데 방점이 있다. 시범 케이스 격이 된 한국은 가장 모진 매를 맞게 된 셈이다.
 
동맹을 상대로 한 보기 드문 미국의 ‘벼랑끝 전술’은 22일 자정 만료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관련, 한국이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시간 차 공격’이란 지적도 있다. 최근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학계 인사는 “아직은 방위비 협상과 지소미아를 즉자적으로 연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방위비 부분에서의 거센 압박과 겹쳐져 ‘퍼펙트 스톰’이 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1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한국을 방어하는 능력, 또 미군이 더 큰 위협에 처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부담 증가라는 측면에서 방위비와 연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유지혜·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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