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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일본 안보 방파제론’…트럼프 무임승차론 닮은꼴?

중앙일보 2019.11.21 00:05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19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가 열린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 스튜디오에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자 300명의 국민 패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9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가 열린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 스튜디오에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자 300명의 국민 패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해 ‘일본 안보 방파제론’을 제시했다.
 

국민과 대화 때 지소미아 관련 발언
“한국이 안보 방파제 역할해줘
일본은 GDP 1%만 국방비 지출”

전문가 “일본 후방기지 역할 간과
1% 발언 군사대국화 이용될 수도”

문 대통령은 “일본 안보에 있어 한국은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우리의 방파제 역할을 통해 일본은 방위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당 대표들과의 만찬에서도 이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번엔 직접 자세한 설명에 나섰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특히 껄끄럽지 않나. 우리가 북한뿐 아니라 동북아 일대에서 일종의 안보적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한국의 안보상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에서 택한 용어로, 미국과도 공식·비공식 만남에서 이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기본입장에 ‘일본이 안보 측면에서 한국 덕을 보면서도 불신한다’는 새 논리가 더해지면서 문 대통령이 사실상 지소미아 종료로 결심을 굳혔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근본적 원인과 책임이 우리가 아니라 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파제론은 고(故) 노신영 전 총리가 1981~83년 양국 간 경제협력 협상 과정에서 제기했다.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노 전 총리는 “한국이 소련·중국·북한의 위협에서 일본의 안보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른바 ‘안보 경협 자금’으로 100억 달러 지원을 요청해 40억 달러를 지원받게 됐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특히 “일본의 국방비 지출은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1%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2.5%, 2.6%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숫자까지 미리 준비, 작심한 듯 일본의 ‘한국 안보 우려론’을 반박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안보 무임승차론’과 닮은꼴이라는 시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동맹국들이 미군이 지켜주는 데 대한 대가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무임승차론 시각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의 방파제론은 일본이 안보 측면에서 많은 돈을 들이는 한국의 덕을 보고 있는데, 일본은 오히려 한국을 향해 안보 우려를 제기하며 수출 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논리적 구조상으로는 문 대통령의 방파제론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무임승차론에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 발언에 대미 메시지 성격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80년대 노 전 총리가 방파제론을 제기할 때와 지금의 국제 안보 환경이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당초의 방파제론에는 남방삼각(한·미·일) 대 북방삼각(북·중·러)이 충돌하는 구도가 전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화두를 던진 문 대통령이 전형적인 냉전적 시각인 방파제론을 제기한 것은 다소 모순적”이라며 “이는 우리가 일본을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막아주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한국은 대중·대러 외교 측면에서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일본이 한국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도 제기될 수 있다. 주일미군 기지의 유엔군 후방기지 역할이 대표적이다. 후텐마 기지를 비롯, 일본 내 7개 주일미군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 집결 및 전개는 물론 전시에 필요한 물자 공급에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주일미군 주둔 비용은 일본이 미국과 나눠 분담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방파제론이 완벽하게 틀린 인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지소미아를 이야기하면서 비용을 언급하는 것은 맥락상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에서 비용 이야기를 하며 동맹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유엔사 후방기지 등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하는 안보적 역할은 언급하지 않아 반쪽짜리 방파제론이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국방 예산이 GDP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역공의 우려가 있다. 일본 국방비는 평화헌법에 따라 1%로 제한된다. 한 전직 외교관은 “이는 ‘일본이 2~3%로 국방 예산을 증액하면 일본의 군국주의화나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은 한편으론 한·미·일 안보협력을 부각했다. “우리로선 안보에서 한·미 동맹이 핵심이지만 한·미·일 간 안보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일본과 안보상 협력은 해나갈 것”이라면서다.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한·미·일 삼각 공조 차질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유지혜·위문희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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