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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밥 욕심에 베개 업고 온 여인도 있었지, 그 시절엔....

중앙일보 2019.11.20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5)

이번 글은 뒷산 종중묘 시제에 참여한 사람과의 이야기를 듣고 옮겼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종일 허둥대고 바쁘셨어요. 우리 집은 종가의 묘를 관리하고 일 년에 한 번 시제준비를 하는 묘지기 집이었거든요. 냉골인 빈방에 며칠 전부터 불을 넣어 따뜻하게 만들어 놓아야 했지요. 작년에 해 놓은 장작더미가 순식간에 폭삭 내려가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장작더미 내려가는 모습에 어깨가 축 처졌습니다. 그해 겨울 방학이 끝나도록 나무를 해서 내 키보다 높이 또 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더 바쁘셨어요. 햇곡식을 타작해 저장하기도 전에 따로 갈무리해놓은 떡쌀을 가득 물에 불려서 방앗간으로 갑니다. 요즘은 한 되 두 되 단위지만, 그땐 한 말 두 말 단위였다오. 그렇게 며칠 동안 방앗간을 들락거리며 쌀을 빻아 온갖 떡을 만들고, 기르던 돼지를 잡아 가마솥에 시래기 넣은 구수한 돼짓국을 한 솥 끓여놓고 나면 전날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오십니다.
 
종가의 묘를 관리하고 일 년에 한 번 시제준비를 하는 묘지기 집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동안 방앗간을 들락거리며 온갖 떡을 만들고, 가마솥에 구수한 돼짓국을 한 솥 끓여놓고 나면 손님들이 모였단다. [사진 pixabay]

종가의 묘를 관리하고 일 년에 한 번 시제준비를 하는 묘지기 집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동안 방앗간을 들락거리며 온갖 떡을 만들고, 가마솥에 구수한 돼짓국을 한 솥 끓여놓고 나면 손님들이 모였단다. [사진 pixabay]

 
도포 자락을 여미며 오신 어른들이 먼저 이 방 저 방 차지하고 앉으면 아랫세대들이 들어가 큰절을 하고 안부를 묻고 덕담도 듣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이 드신 분들은 피곤함을 못 이기고 먼저 주무시지요. 농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가 밤이 깊도록 오가고 그사이에 내년도 계획까지 마무리 짓다 보면 새벽이 오지요.
 
온갖 제수 준비한 것을 보자기에 싸고 묶고 하여 젊은이 중에 힘쓸 지게꾼을 뽑아서 짐을 나릅니다. 그땐 떡 짐만 지게꾼 세 명이 붙을 때도 있었지요. 제기를 갖고 올라가는 팀이 먼저 올라가서 기다려 떡과 제수를 내려놓으면, 그걸 차곡차곡 쌓아 모양 있게 담아 제기에 올리는 일도 손재주 좋은 어른들이 하지요.
 
그땐, 추운 날씨에도 산꼭대기까지 모두 한복을 입고 올라갔어요. 남자들이 쭉 둘러서서 앞의 어른들 하는 걸 보고 절을 따라 하다 보면 제가 끝납니다. 당연히 어린 우리는 제보다 젯밥에 눈독이 들어갔고요. 끝나고 돌아보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지 제를 지낼 땐 안 보이던 여자들이 엄청 많이 올라와 있어요.
 
한쪽에서는 그날 산에 올라간 사람 머릿수를 세어 봉지에 나누어 음식을 담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상하도 없고 나이순도 아닌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넣은 제수 음식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 속엔 일 년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는 별별 음식이 다 들어있었거든요.
 
 
지금은 사과 하나도 아기 머리통만큼 크지만, 그땐 어른 주먹보다 더 작은 사과를 대패로 썰 듯 편을 썰어 하나씩 나누어야 할 만큼 먹거리가 귀한 때였습니다. 한 봉지라도 더 얻으려고 어느 여인은 베개를 포대기에 넣어 업고 올라오기도 했대요. 머릿수 계산으로 나누어 주었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어떤 핑계를 대어서도 안 오려 하지만, 그땐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도 시제에 참여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수 음식 한 봉지를 얻기 위해서요. 지금은 그 음식 봉투를 안 가져가려고 제를 지내자마자 도망치듯 내려가기도 하니 세상사 참 많이 변했지요.
 
지금도 어느 종가의 시제 땐 200명이 넘는 종가사람들이 모이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종가는 재산이 많기도 하지만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종가어른들의 마음도 큰 역할을 하지요. 그런데 그냥 모이는 것 같지만 참석하면 봉투를 주는 곳도 있답니다. 먼 길 와서 제를 참여하고 다녀가는 품이랍니다. 요즘 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한나절 다녀가도 일당이 생기니 참 좋은 발상이지요. 물론 종가가 돈이 많아야 되겠지만요. 공짜가 없는 세상입니다.
 
일년에 한 번 상하도 없고 나이순도 아닌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넣은 제수 음식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그 속엔 일 년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는 별별 음식이 다 들어있었다고 한다.[중앙포토]

일년에 한 번 상하도 없고 나이순도 아닌 머릿수대로 공평하게 넣은 제수 음식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그 속엔 일 년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는 별별 음식이 다 들어있었다고 한다.[중앙포토]

 
우리도 역사가 있는 큰 집안인데 어른들이 살아 계셔도 편찮으신 분들이 많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 세 사람만 모여서 시제를 지내요. 뭔 짐이 저리 많으냐고요? 에이, 상에 올릴 건 그래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준비해야 하거든요. 한 사람은 떡시루, 한 사람은 과일이랑 건어물자루, 한 사람은 제기 박스를 들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각자 세 등분해서 자기 박스를 만들어 내려오니 크게 힘 안 들어요.
 
내 나이 오십인데 시제의 의미를 말해 달라고 한다면 어릴 적부터 따라 다니며 보아온 예절이고 풍습이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아무리 힘들어도 산에 오를 수 있는 동안에는 꼭 참여하려고 합니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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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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