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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 ‘인싸’가 전북 고창으로 귀촌해 벌인 일

중앙일보 2019.11.20 05:03
오전 11시, 알람을 맞춰놓고 즐겨찾기 해 놓은 ‘마켓레이지헤븐’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한다. 오늘은 유기농 현미로 만든 들깨 절편을 오픈하는 날이다. 서둘러 클릭해보지만 결제까지 무사히 가기는 쉽지 않다. 곧이어 ‘품절’이 뜬다. 마켓레이지헤븐은 안리안·유상진 대표가 전북 고창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다. 온라인으로 햇밤·햅쌀·고춧가루·수미감자·호박·복숭아 등 1차 농산물을 중심으로 들깨를 넣은 떡 등 가공식품도 판매한다. 본래 패션 업계에서 잔뼈 굵은 기획자였던 이들. 어쩌다 고창에 자리 잡고 농산물에 업을 두게 된 걸까. 두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농산물 직거래 장터 '마켓레이지헤븐'
안리안·유상진 대표 인터뷰
하루 3000 박스 주문 들어오기도
로컬 기반 문화 콘텐트 기획할 것

사진=마켓레이지헤븐
 
지난 2016년 6월 고창 무장읍성에서 열렸던 두 번째 마켓레이지헤븐 팜 테이블.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지난 2016년 6월 고창 무장읍성에서 열렸던 두 번째 마켓레이지헤븐 팜 테이블.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전북 고창에 터를 잡은 마켓레이지헤븐은 도매시장에서 떼어온 물건은 취급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시골의 좋은 밭이나 농장 둘러보는 게 취미”라는 안리안 대표의 말처럼 좋은 농산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 농부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농산물을 받아 직접 포장해 발송한다. 직원은 6명. 하루 포장할 수 있는 상품의 개수에 한계가 있어 더 못 팔 만큼 인기다. 한눈에 보기에도 신선하고 실한 농산물을 소량판매하고, 완숙 토마토도 한 개 한 개 줄을 세워 포장할 정도로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검품이 까다로운 마켓레이지헤븐의 사인이 들어간 안내장에는 어떤 농부가 이 농산물을 길렀고, 언제 수확했으며 어떻게 먹으면 좋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시골 할머니가 보내준 먹거리 소포에 들어있던 편지처럼 말이다.  
 
패션 업계서 농업이라니, 의외의 행보다.  
“패션 홍보로 시작해 외주로 패션쇼도 진행하고 브랜드 연계 행사도 여는 패션 프로듀서로 약 10여년 정도 일했다. 바쁘게 살면서도 ‘10년 후 뭘 할까’를 늘 고민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기본이다 보니, 결국 먹거리에 관심이 갔다. 약 20년 후 농업으로 가자는 말을 서로 종종 해왔다. 자연스레 패션 일을 하면서도 한 번 소비하고 마는 형태의 기획이 아니라 매번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먹거리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파리에 출장 가면 다들 옷을 사는데 나는 봉마르셰 백화점 식품관에서 설탕·소금을 사 왔다. 광고 촬영을 진행할 때는 케이터링을 직접 준비하기도 했다. 한번은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버튼 쇼를 준비하는데, 이왕 하는 거 멋지고 건강한 걸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보통 패션쇼 현장에서 먹는 음식들이 샌드위치 정도로 빈약하다. 일회용은 쓰기 싫어서 양은 도시락에 밤새도록 쌈밥을 쌌다. 강된장에 샐러드, 쌈밥 넣은 도시락을 잎으로 감싸 하나씩 포장하고 모델들 이름도 썼다.”  
 
안리안 유상진 대표. [사진 컨셉진]

안리안 유상진 대표. [사진 컨셉진]

 
마켓레이지헤븐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2015년도쯤 집을 정리하는데 운명적으로 예전에 써 둔 기획서가 나왔다. ‘소울팜 프로젝트’라는 도시농업 기획안이었는데, 그걸 보고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것이 생각났다. 진짜 농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주말마다 지방에 다녔다. 무작정 농협 마트에 가서 특산물 보고, 물건이 좋다 싶으면 농부도 찾아가 봤다. 어느 날 고구마 말랭이를 발견했는데 너무 맛있어 농부님을 찾아가서 얘기를 나눴다. 고창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고 계신 임성규 농부였다. 그를 따라 고창까지 왔다.”  
 
처음부터 농산물을 판 건 아닌데.  
“패션과 농업, 도시와 농촌이라는 극과 극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농업과 지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 서울에선 라이프스타일 플리마켓이 유행이었다. 시골에서 우리만의 전통을 살린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도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수프나 샐러드 등 프렌치 스타일 한 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재즈 공연을 곁들인 소셜 다이닝 행사였다. 마침 ‘킨포크 스타일(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회현상)’이 유행했던 시기라서 잘 맞아 떨어졌다.”  
 
2016년 12월 '마켓레이지헤븐X임성규네고구마' 팜 카페 현장. 비닐 하우스에 테이블을 두고 진행했다.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2016년 12월 '마켓레이지헤븐X임성규네고구마' 팜 카페 현장. 비닐 하우스에 테이블을 두고 진행했다.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시골에서 소셜 다이닝이라니 색다르다
“자연만큼 확실하게 멋있는 게 없다. 손을 거칠 필요가 없다. 풀숲에 식탁을 자리고 공연을 하며 음식을 내고, 비닐하우스 안에 식탁을 차려 ‘팜 파티’를 열었다. SNS에 올라간 사진들을 보고 자연스레 고창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 농업이라는 사업에 뛰어들면서 목표했던 지역 활성화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통해 지역의 가치를 알았으면 좋겠다.”  
 
들판에 테이블을 깔고 재즈 공연을 하며 우리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냈던 마켓레이지헤븐 팜 파티 현장.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들판에 테이블을 깔고 재즈 공연을 하며 우리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냈던 마켓레이지헤븐 팜 파티 현장.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온라인 판매가 잘 되는 것으로 안다. 특히 들깨 떡 인기가 많다.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당시 먹었던 음식 재료를 살 수 있는지 문의를 많이 했다. 그때부터 브로콜리‧토마토‧아스파라거스 같은 걸 선별해서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반응이 좋아 고창 근처 농가의 제품을 직접 받아 포장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들깨 떡은 우리 이름을 알린 품목이다. 초기에는 10초 컷으로 상품이 매진되고, 하루에 3000박스 주문도 들어왔다.” 
 
마켓레이지헤븐의 간판 상품, 들깨 가래떡.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마켓레이지헤븐의 간판 상품, 들깨 가래떡.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농산물을 살 수 있는 곳은 많다. 인기 비결이 뭘까.  
“우리는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간자다. 다만 단순히 농부에게 물건을 떼다 파는 게 아니라, 농부와 협업해 일한다. 수확 시점도 조율하고, 덜 익었을 때는 어떻게 할지 상의도 한다. 음식은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농부가 밭을 대하는 태도, 어떤 마음으로 작물을 가꾸는지를 본다. 오랜 조율 끝에 받은 물건에는 안내문이 동봉된다. 이 농부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식으로 재배했는지 우리의 진정성을 담아 소개한다. 시골에 사는 지인이 보내주는 먹거리 꾸러미인 셈이다.”  
 
안리안 대표는 음식은 곧 에너지라고 믿는다. 농부의 진정성을 담은 먹거리를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안리안 대표는 음식은 곧 에너지라고 믿는다. 농부의 진정성을 담은 먹거리를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로컬 시대라고 한다. ‘마켓레이지헤븐’은 발 빠르게 로컬 콘텐트를 전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들을 하면서 삶의 흐름이 어떻게 갈 것인지 느꼈던 것 같다. 도시 사람일수록 그리워하는 시골의 정서가 있다. 차가 없어서 훤한 길이 너무 좋고, 탁 트인 공간에서 위로받고 하는 것 말이다. 지금도 온라인으로 농산물을 판매하지만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오프라인 숍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택배 쓰레기 등 온라인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기도 한다. 결국 가고자 하는 것은 역시 오프라인 마켓이 아닐까 싶어 고창 사무실에 식료품 숍도 냈었다. 두 달 정도 운영했는데, 아직은 이르다는 판단에 접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농산물은 워낙 간헐적이라 이것으로만 생활하긴 어렵다. 퇴근할 때 들러서 쉽게 사갈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 일상적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식료품점이 목표다.”  
 
2017년 고창 마켓레이지헤븐 사무실에서 잠시 운영했던 오프라인 식료품 숍, 고창 스토어.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2017년 고창 마켓레이지헤븐 사무실에서 잠시 운영했던 오프라인 식료품 숍, 고창 스토어. [사진 마켓레이지헤븐]

 
서울에서 팝업 행사도 한다고.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대신 서울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연다. 우리 나름대로의 실험이다. 11월 28일부터 2주 동안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근처에서 아침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한다. 우리가 취급하는 건강한 농산물로 만든 수프 등을 낼 계획이다. 12월에는 내추럴 와인 바 팝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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