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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사공일과 김인호가 말하고 싶은 것

중앙일보 2019.11.20 01:18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최근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참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왕년에 경제 칼럼니스트로 필명을 날린 원로 언론인이 꺼낸 얘기다. 최근 한국경제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우리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유체이탈식 화법을 되풀이한 데 대한 비평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권력의 극지화’라고 설명했다. 북극에 가면 나침반 기능이 확 떨어진다. 나침반은 원래 북극을 가리키는 물건인데 극지에 갔으니 방향을 잡지 못한다는 거다. 그저 침이 심하게 떨리면서 간간이 북쪽을 가리킬 뿐이다. 권력을 잡고 청와대만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고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면서 나라 경제가 벼랑 끝에 서도 장밋빛 해석과 전망만 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셈이다.
 

정권에 ‘악마의 대변자’가 실종
경륜 있는 전문가들 충언 쏟아져
문 대통령 원로들 의견 경청해야

현 정부는 지난 1년 새 비정규직이 86만명 늘어났는데도 입맛에 맞는 통계만 들이대며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고 자랑한다. 주요국 가운데 나 홀로 경기침체에 빠져들어 급기야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경제의 기둥인 30·40세대 일자리가 2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인데도 말이다. 이래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악마의 대변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혹시라도 집단사고에 빠져 부적절한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지 검증하는 역할이 필요하지만, 현 정권에서 그런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이 거의 마지막 악마의 대변자였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5월 소득주도 성장의 문제점을 비판한 뒤 그 직을 떠났다.
 
이제 이 정권에는 악마의 대변자도 사라졌으니 권력의 극지화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럴수록 나라 걱정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문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외침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과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누구인가. 1960~90년대 한국 경제가 간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으로 도약할 때 국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사공일은 최장수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 두 번을 역임했고, 김인호 역시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수석을 거쳤다. 둘은 한국무역협회장도 거쳐 정책과 현장에 두루 밝다. 이들이 최근 상소문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사공일은 『한국경제의 지속번영을 위한 우리의 선택』을 펴냈다. 어떤 내용인지는 지난주 본지 ‘직격인터뷰’에서도 심층적으로 소개했다.
 
그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지금이라도 경륜 있는 각계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장 잠재력이 너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그러니 현 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혁신성장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가들의 ‘즉흥적 낙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라면서 부디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고 호소했다.
 
김인호는 1967년 경제기획원 사무관부터 2017년 한국무역협회장까지 지난 50년간의 회고록 『명과 암 50년 한국경제와 함께』를 펴냈다. 지난주 북 콘서트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한덕수 전 총리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책이 1000쪽에 달해 주말 내내 읽었다. 김인호는 전두환 정권에서 물가정책국장을 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봤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는 “(지나보니) 경제는 수요·공급이란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철저한 시장주의자가 됐다. 그는 “지금 국가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나라가 존망의 갈림길에 빠졌다”면서 “시장으로 귀환하는 정책 없이는 한국경제에 미래가 없다”고 일갈했다. 사공일 역시 “시장 기능 무시하는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정권은 부디 이들 경륜가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보여주기식 ‘국민과의 대화’가 따로 필요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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