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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원인도 모른 채 신약이라며 주삿바늘만 찔러댄다면 …

중앙일보 2019.11.20 01:14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싶어서다. 목적이 무엇이든, 그걸 쫓으려 인간의 가치를 팽개치는 게 충격이었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그 잔인성을 질타하는데 눈도 끔쩍하지 않아 더 놀랐다. 북한 선원 2명에 대한 강제북송 얘기다. 그들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북한에 넘겨지면 고문당한다는 건 상식이다. 손톱을 뽑고, 몸에 전기를 흘리고, 거꾸로 매달아 매질을 하고, 잠도 안 재운다면….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아무리 상식이 안 통하고, 궤변이 즐비한 사회가 됐다고 쳐도 이건 아니다. 눈가리개를 벗고 판문점 경계선 넘어 북한군을 봤을 때 그들의 눈에 서렸을 그 공포를 생각하면 오싹하다. 그런데도 “(그들을) 받으려면 자기 집 방 하나 내주던가. 문재인 정부가 싫어서 (북송을) 반대한다”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건 광기 아닐까. 이런 광기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게 섬뜩하다.
 
어디 살벌한 게 이뿐이던가. 경제든, 정책이든, 정치판이든 온통 살얼음판이다. 국민의 바람은 한가지다. 잘 살게 해주는 거다. 그래서 어느 정부든 잘 되길 바란다. 이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솔직하고, 귀를 열고, 신중해지길 희망하는 이유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포장술이란 눈가리개를 쓴 듯하다. ‘일자리가 없다’는 호소에, 정부는 “고용률이 올랐다” “좋은 일자리인 상용직이 증가했다”고 강변한다. 따지고 보니 노인 일자리가 확 늘어나 고용률이 올랐다. 정부가 돈을 퍼부어 만든 일자리다. 정부 돈이 끊기면 사라지는 일자리다. 이걸 홍보대상으로 이용하는 건 소일거리 삼아 몇 푼 받았던 노인을 모욕하는 짓이다. 상용직도 20년 전부터 증가해왔다. 이 정부의 치적이 아니라 추세다. 더욱이 1년 이상 일하면 상용직으로 분류된다. 1년 넘게 아르바이트만 해도 상용직이라는 얘기다. 고용의 질과 관련이 없다. 이걸 ‘좋은 일자리’로 포장하는 기술과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정책의 선후가 바뀌는 건 다반사다. 주52시간제를 덜컥 시행했다 실태조사를 하더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18일 정부 차원의 보완책을 내놓으며 머쓱해 했다. 최저임금을 확 올렸다가 고용시장이 충격을 받자 3조원 대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뿌렸다. 정책 수립 전에 미리 실태조사를 거쳤다면 땜질식 처방이 필요했을까.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일단 질러놓고, 부작용에 뒷북 대책을 내놓는 식이다. 이건 사실상 실험이다.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좋겠는데, 내로남불은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국가재정 건전성을 목청껏 떠들더니 결국엔 표를 쫓아 예산을 편성하는 볼썽사나운 꼴을 보인다. 이 대열엔 여야가 따로 없다. 후대가 그 빚을 떠안아야 한다. 정치권의 자기 보신 때문에 지금의 청년과 청소년이 빚을 갚느라 허덕대야 할 판이다. 탄력근로제 확대 등을 담은 주52시간제 보완입법은 1년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중소기업이 “그것만이라도 통과시켜 달라”고 애걸하는데도 당리당략이 우선이다. 보다 못한 정부가 ‘특별연장근로 확대’ 같은 대책을 내놓자 “정부가 입법 훼방을 놓고 있다”(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자유한국당)는 몽니를 부린다. 애초 입법을 못 한 국회의 잘못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이 또한 정치권의 전형적인 포장술 아닐까.
 
그래서 두렵다. 눈가리개를 벗었을 때 엄습할 공포가 무섭다. 이젠 실험을 그만하고, 포장도 관두면 안 될까. 실패의 원인부터 찾았으면 싶다. 원인도 모른 채 신약이라며 주삿바늘만 찔러대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그 잔인한 공포를 어떻게 견디라고.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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