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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민주 없는 자유의 허망함…구의회 직선에 쏠리는 눈

중앙일보 2019.11.20 01:10 종합 28면 지면보기

홍콩 장기 시위가 남긴 과제 

홍콩 시위대의 최후 거점인 홍콩이공대에 대해 경찰이 지난 18일 강경 진압작전에 나서면서 6개월째 이어지는 장기 시위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이 날 오후 홍콩 시내 번화가인 침사추이역 인근 도로에서 시민들이 행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홍콩 시위대의 최후 거점인 홍콩이공대에 대해 경찰이 지난 18일 강경 진압작전에 나서면서 6개월째 이어지는 장기 시위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이 날 오후 홍콩 시내 번화가인 침사추이역 인근 도로에서 시민들이 행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6월 9일 시작된 홍콩 시위가 5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영국 식민 시절인 1967년에 7개월 넘게 폭동이 계속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광범한 대중이 대규모로 참여한 시위가 장기간 계속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점점 격렬해지는 시위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시위대가 평화적 방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시위 초반엔 65%였으나 최근 46%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10월 중순에는 만일 정부가 계속 시민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시위대가 행동 수위를 높이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59.2%가 찬성했고 반대는 29.2%였다. 이는 홍콩에서 매우 드물고 특별한 상황이다. 홍콩은 1960년대까지는 정치적 움직임이나 파업·시위가 여러 번 있었지만 67년 폭동 이후 격렬한 정치적 행동은 금기시되었고 번영과 안정이 주류 정서로 자리잡아왔다.   
 

“스스로의 정치적 행동으로 하나하나 권리를 얻어내지
않으면 어떤 자유도 금새 무너질 수 있다는 깨달음은,
당장은 중국에게 위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중국사회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송환법 철회 이후에도 왜 시위가 거세졌나. 초반의 평화적 시위에 대해 경찰의 강경대응으로 부상자가 나오고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면서 시위의 타겟이 송환법 자체를 넘어서 경찰 폭력 그리고 홍콩의 통치시스템 전반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통치 시기엔 악명이 높았으나 70년대부터 부패척결 등의 노력으로 아시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기도 했던 홍콩 경찰은 이제 시위대와 매일 충돌을 빚고 있다. 특히 8월 31일 지하철 안에 들어가서 시위대와 시민을 가리지 않고 구타한 사건은 큰 충격을 주어 최근 여론조사에서 51.5%가 홍콩 경찰에 신뢰도 0점을 주었다. 시위 시작 전 같은 조사에서 경찰에게 신뢰도 0점을 준 응답자는 6.5%에 불과했다. 지금 만일 시위를 중단하면 현 상태가 앞으로 홍콩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왜 시위는 계속되나
 
이번 시위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시위 참여자들을 해고하여, 국제적 상업도시 홍콩이 지녔던 자유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부가 2003년 반대에 부딪쳐 유보했다가 최근 다시 추진 중인 국가안전법은 국가전복과 반란선동에 대해 강한 처벌을 하려는 것이다. 이번 시위 사태로 수십 년만에 발동된 긴급법은 언론·인터넷 통제와 자산몰수, 추방과 기존 법 중지 등을 행정수반 지시로 즉각 실시할 수 있게 한 일종의 계엄령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언제든 다시 발동될 수 있다. 홍콩에서 점점 아무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질 거라는 우려가 대다수의 홍콩 시민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이번 시위가 최근 들어 격렬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표출되는 듯 보이며,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위는 하나의 국가 안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공존을 시도한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실패를 보여주는가.
 
역사적·사상적 실험이었던 일국양제는 홍콩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게 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식민 유산도 상당 부분 유지되게 해주었다. 그러나 홍콩이 품고 있는 이 차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결코 모두 제거되어야 할 것만은 아니다. 
 사실 영국 식민지 유산 중 많은 부분을 중국에 반환된 뒤 홍콩 정부가 활용하고 있다. 시민의 정치참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제한적 여론수렴 제도, 모두에게 평등한 투표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기업 등 소수에게 유리한 기형적 선거제도, 시위·집회 허가제와 무거운 폭동죄 규정, 이번에 복면금지법의 갑작스러운 실행을 가능하게 만든 긴급법 등이 모두 식민 시대의 유산이다.
  
반중(反中)은 핵심이 아니다
 
이번 시위에서 반중은 핵심이 아니었다. 시위가 상당히 격렬해진 9월 말 행정수반 캐리 람과 시민들의 첫 대화에서 시민들은 “우리는 독립하려는 게 아니라 일국양제 안에서 민주와 자유를 원할 뿐이다. 우리는 정말 국가와 홍콩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10월 말의 여론조사에서도 홍콩 독립 찬성은 11%에 불과했고 반대가 83%였다. 사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거나 기억을 못 하지만 반환 후 중앙정부에 대한 홍콩인의 신뢰는 점점 높아져 홍콩정부에 대한 신뢰보다 높은 적도 있었다. 2007∼2008년의 여론조사에서 일국양제에 대한 신뢰도가 최고 77.7%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사건을 거치며 본토인과의 갈등이 심해졌고, 본토와 홍콩을 통합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반면 홍콩인들의 생활은 개선되지 않자 불만이 높아졌다. 또 행정수반 직선제 무산, 직선으로 뽑힌 의회 의원의 자격 박탈 등으로 인해 홍콩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없어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 초반 시민들은 결코 중국 반대도, 독립 요구도 아니라고 강조했으나 시위가 진행되면서 점점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진 점, 그리고 중국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본토인과 연대하자던 홍콩인의 목소리가 점점 묻히게 된 것은 중국으로서도 큰 비극이다.
 
시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11월 24일 구의회 선거를 예정대로 치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재 홍콩의 행정수반은 선거위원회에서 간접선거로 뽑고 의회는 절반만 직선으로 선출되지만, 구의회 선거는 거의 모두 직선으로 선출될 뿐만 아니라 행정수반 선거위원회 1200명 중 117명이 구의회에서 나온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982년 시작된 구의회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이번에 모든 구에서 경선이 이뤄져 가장 뜨겁게 민의를 보여주는 장(場)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친정부파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불리해 보이자 격렬한 시위를 이유로 들어 선거를 미루려 하고 있다. 홍콩 정치제도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행정수반과 의회 직선 도입 문제는 반환 전부터 수많은 담판과 협상에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굴곡을 겪으며 해결이 안 되어 오늘날 10대 청소년까지도 길거리에 나서게 만들고 있다. 직선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 없는 자유의 허망함을 이번 시위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차이 품으며 공존하는 일국양제 만들어야
 
‘말은 그대로 뛸 것이고 춤은 그대로 추게 될 것이다’. 반환 후 홍콩인들이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중국의 약속을 상징했던 말이다. 경마와 유흥오락을 즐길 자유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던 홍콩인들이 이제 경제적 자유라는 허울 속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정치적 행동으로 하나하나 권리를 얻어내지 않으면 어떤 자유도 금새 무너질 수 있다는 깨달음은, 당장은 중국에게 위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중국사회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시위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과제를 남기고 있다. 중국은 홍콩인들이 중국본토인과 소통해온 공간에서 차이를 품으며 공존하는 일국양제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도 홍콩 시위를 홍콩만의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자밀 앤덜리니는 “한 때 인간개발지수 세계7위이던 홍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홍콩 시위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조금씩 부딪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또다른 한·중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미 청년들은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 모두와 연대하며 자유와 민주를 위해 노력하자”고 이야기한다. 모순과 갈등이 혐오와 배타로 끝나기보다 새로운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토론을 시작할 때다.
 
키워드
일국양제
하나의 나라(중국)에 사회주의(본토)와 자본주의(홍콩ㆍ마카오)의 두 가지 제도가 공존함을 일컫는 용어. 1982년 시작된 홍콩 반환 협상에서 중국은 통치권 반환을 주저하는 영국에 “홍콩의 사회제도, 생활양식, 법률은 반환 후 50년간 변함없을 것”이라며 일국양제 실시를 약속했다.


송환법
홍콩 지역에 있는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 등 인도 협약을 맺지 않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법안으로 홍콩 대규모 시위의 발단이 됐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9월 법안 폐기를 선언했으나 시민들은 ▶경찰 강경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시위 참여자 무조건 석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구의회 선거
홍콩 18개 구(區) 의회 의원을 24일 직접 선거 방식으로 선출한다. 시위 지도자 조슈아 웡(사진)의 출마 자격은 박탈됐다. 홍콩 정부가 대규모 시위를 구실로 선거를 막판에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장정아 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논문 주제는 『홍콩인 정체성의 정치: 반환 후 본토 자녀의 거류권 분쟁을 중심으로』.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및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재직 중.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역임.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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