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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은 노란 코트” 그 뒤엔 ‘AI 빅브라더’

중앙일보 2019.11.20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지난 14일 밤 10시. 회사원 고영주(39) 씨가 부서회식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이커머스(e-commerce) 쿠팡의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했다. 계란 한 판과 생수(500㎖·20개), 우유(2.3ℓ·1개), 식빵과 햄, 그리고 아들의 실내화(220㎜·디즈니 아동용)를 골랐다. 온라인 장바구니에 원하는 제품을 담고 나면, 쿠팡의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 움직인다. AI는 즉시 쿠팡메가물류센터에 생수·실내화 출고를 지시하고, 신선식품물류센터에 계란·우유·식빵·햄 출고 명령을 내렸다.
 

유통업계 뒤흔드는 인공지능
쿠팡, 정확한 물건 위치 AI만 알아
하루 200만개 로켓배송 총지휘
백화점·마트, 소비성향 맞춤 추천
편의점 신선식품 폐기율 1% 내로

 
AI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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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계란·식빵·실내화 담당자 중에서, AI는 출고상품과 작업자간 거리가 가장 가까운 물류센터 작업자의 개인용 정보단말기(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로 명령을 전달했다. 9만9174㎡(약 3만평) 규모의 이 물류센터에는 ‘실내화 코너’가 없다. 똑같은 220㎜ 실내화라도 디즈니 실내화가 동쪽 끝에 있다면, 헬로키티 실내화는 서쪽 끝에 있을 수 있다. 위치를 정확히 아는 건 오직 AI뿐이다. 작업자가 실내화를 집어오는 동안 AI는 상품 배송경로를 계산했다. 덕분에 고 씨가 주문한 상품은 15일 오전 4시 37분 고 씨의 집 앞에 모두 도착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쿠팡의 서비스(로켓배송)가 등장한 배경은 AI다. 이베이코리아의 G마켓 동탄물류센터에서도 AI가 서로 다른 판매자의 상이한 제품을 한 박스에 포장하는 최적의 동선을 제시한다. 고명주 쿠팡 인사부문 각자대표는 “고객이 어떤 제품을 주문할지 미리 파악하는 AI 시스템 덕분에, 쿠팡은 불과 수 시간 만에 일 200만개 배송주문을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AI가 공장 전체를 통제하기도 한다. 동원홈푸드가 지난 10월 1일 충주시에서 가동을 시작한 스마트공장은 AI가 원재료 보관부터 제품을 제조·완성해 출고·포장하는 과정까지 총괄하는 ‘공장장’ 역할을 한다.
 
생산·운송이 끝나면, 재고 물량을 조절하는 역할도 AI가 맡는다. 실제로 삼성물산이 개발한 AI(아이피츠)는 지난해 가을부터 의류 재고 물량 조절 업무를 맡고 있다. 재고 예측은 의류업체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롱패딩 유행을 예상하고 대량생산했다가 생각만큼 안 팔리면 그만큼 제조사는 재고를 떠안아야 한다. 김정걸 삼성물산 정보전략팀장은 “기존에 물량 조절 업무를 맡았던 가장 노련한 담당자보다 아이피츠가 적정 물량을 훨씬 정확하게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신선식품 분야에서 AI의 재고 관리 역량은 이미 증명됐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신선식품 배송 애플리케이션 헬로네이처는 AI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AI가 주문량을 정확히 예측해서 재고를 관리한 덕분에, 헬로네이처 신선식품 폐기율은 1% 미만으로 감소했다.
 
AI는 신제품 연구개발(R&D)에도 참여하는 똘똘한 ‘연구원’이다. 롯데제과는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AI(엘시아·LCIA)를 투입한다. 엘시아는 8만여개 식품 관련 웹사이트와 1000만여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분석해 식품·과자·초콜릿 등 제품군별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재료·맛을 찾는다. 이렇게 엘시아가 추천한 신제품은 벌써 몇 번이나 속칭 ‘대박’을 쳤다. 꼬깔콘 버팔로윙맛은 출시 2달 만에 100만 봉지가, 도리토스 마라맛은 4달 만에 150만 봉지가 팔렸다.  
 
“이 맛이야” “올핸 롱패딩 1만벌 준비” AI 빅데이터로 대박
 
 
유통업계의 다양한 인공지능 활용 방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유통업계의 다양한 인공지능 활용 방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김혜영 롯데그룹 이커머스사업본부 AI전문가그룹센터장은 “텍스트·음성을 이해하고 답변하는 기술과 이미지로 유사 상품을 검색하는 기술은 물론 스스로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비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한 상품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온라인쇼핑·모바일쇼핑 시장 확대는 AI 기술 발전에 불을 댕겼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AI 기술도 정확성이 향상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딥러닝·deep learning) 덕분이다.
 
AI 기술은 이제 소비자의 소비·구매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알레그리아 판교커피바에선 출퇴근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 서서 커피를 주문하지 않는다. 카카오가 개발한 AI의 일종인 챗봇(chatbot) 덕분이다. 예컨대 챗봇 입력창에서 메뉴를 추가하면, AI가 ‘뜨거운 아메리카노 1개 추가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를 본 사용자가 ‘주문 끝’이라고 입력하면 ‘이대로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되묻는다. ‘네’라고 입력하면 현재 대기 중인 주문건수·주문번호를 알려준다. 이렇게 카카오가 개발한 챗봇을 사용하고 있는 커피숍은 전국 100여개다.
 
◆본인보다 AI가 더 성향 잘 알아=AI는 소비자 본인보다 더 잘 소비 욕구를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신세계백화점 AI 고객분석시스템(S마인드)은 소비자 구매 이력과 구매빈도·구매주기·구매요일·주거래점 등 100여개의 변수를 사용해 매일 빅데이터를 생성한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1인당 100개씩 추려낸다.  
 
롯데마트의 애플리케이션(M쿠폰)도 마찬가지다. M쿠폰은 아마존웹서비스(AWS)의 AI 알고리즘(아마존퍼스널라이즈·Amazon Personalize)을 활용해서 소비자가 살 가능성이 큰 제품·카테고리의 할인·적립 쿠폰을 제공한다. 신재현 롯데마트 빅데이터팀장은 “2개월간 10만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M쿠폰을 발송한 결과, 기존 쿠폰보다 실제 사용률이 2배가량 높았다”고 설명했다.
 
홍정우 한국과학기술정보원 가상설계센터 선임연구원은 “AI가 유통산업 혁신을 유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선도기업과 후발기업간 기술 편차가 확대하고 일부 기업에 AI 인재가 쏠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부작용도 발생한다”며 “유통혁신이 각종 산업과 유관하다는 점에서, 향후 수 년 동안 AI는 국내 유통산업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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