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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불출마 선배' 이철희와 지난주 술약속 했다 미뤘다

중앙일보 2019.11.19 16:18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 먹은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한 임 전 실장은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5월 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모친 빈소로 들어가는 모습. [뉴스1]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 먹은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또한 임 전 실장은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5월 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모친 빈소로 들어가는 모습. [뉴스1]

총선 불출마를 고심하면서 나누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 걸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 의원과 술 약속을 잡아놨었다. 지난달 15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여권에 쇄신론의 물꼬를 튼 이철희 의원이다. 임 전 실장과는 같은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19일 통화에서 “한 달 전쯤인가 임 전 실장과 채팅 메신저로 대화하다 ‘만나서 술 한잔하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허리가 좀 안 좋다’고 해 연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났다면 본인이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겠냐”고 했다. 
 
이 의원은 임 전 실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호평했다. 이른바 86세대의 상징으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사무총장에 대통령 비서실장 이력, 대선 주자로도 거론됐다는 점 등 정치적 무게로 치면 86그룹 중 가장 비중 있는 인사인데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건 큰 결단이라면서다.
 
임 전 실장의 불출마는 본인 의지야 어떻든 여당 내 주류 세력으로 포진한 86그룹의 세대교체론에 불을 댕긴 형국이다. 이 의원은 “마침표 찍을 때가 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뤘고 2017년 촛불-탄핵을 거치면서 어떤 세대 못지않게 기여하고 주목받은 86세대가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진보가 꼰대스러우면 안 된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내가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는 게 진보”라며 “그런데도 계속 ‘마이 묵겠다’고 하면 떠밀려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이철희 의원(오른쪽)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선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이철희 의원(오른쪽)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선구 기자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86그룹 자성론을 폈다. 김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386 집에 가라’는 것에 동의는 안 된다”면서도 “20대부터 시작해 50대까지 30여년을 정치 주역으로 뛰었는데 대한민국 혁신에 얼마나 성과를 거뒀느냐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86그룹의 움직임은 현재까지 ‘각자도생’ 양상이다. 30대 이른 나이에 정치권에 입문해 현재 50대가 된 이들의 정치적 덩치가 커진 만큼 단일대오로 움직이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86세대가 일심동체인 것도 아닌데 ‘집단의 퇴장’ 이런 관점에서 보는 건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86그룹의 정치적 진로는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분화하고 있다. 먼저 제도권 정치를 벗어나 외곽 활동을 선택한 그룹이다. 임 전 실장과 이 의원처럼 불출마의 길로 나간 정치인들이다. 임 전 실장은 본인이 밝힌 대로 당 바깥에서 “통일 운동에 매진”하면서 정치적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남북관계에 혁신적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남북 교류사업에 앞장서고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등을 지낸 임종석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이 의원은 언제든 전략통으로 중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무위원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각에서 문재인 정부 중·후반기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는 이들 두 장관은 본인들 의지와 상관없이 지역구 재출마가 어려워진 것으로 당에서는 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에서 질의 중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에서 질의 중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외곽과 내각이 선택지가 아닌 상당수 86그룹은 당에 남아 총선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의 대표적 86그룹인 이인영 원내대표는 “꼭 일해야 할 사람은 일하는 과정으로 헌신하고 기여하면 좋겠다”(17일 기자간담회)고 했다. 우상호 의원도 “우리가 정치 기득권화돼 있다고 말하는 데 대해 모욕감 같은 걸 느낀다. 그만두는 게 제일 쉽다”(18일 라디오 인터뷰)고 말했다. 송영길·최재성 의원도 지역구 재출마 의지가 강하다.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연구원 양정철 원장과 백원우 부원장은 후방 지원군 역할을 하며 민주당 총선과 차기 대선 전략을 그려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 일각에선 오히려 내년 총선 이후 ‘86그룹의 강화’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기초단체장 출신으로 지역구를 다지고 총선 출마 채비를 해온 김우영(전 은평구청장)ㆍ김영배(전 성북구청장)ㆍ이해식(전 강동구청장) 등도 내년 4월 당선된다면 또 다른 86그룹의 일원으로 국회를 채우게 된다. 청와대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진성준 전 정무비서관 등 원외에서 몸을 풀고 있는 86 인사들도 여럿 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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