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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기거하며 일하는 처사들은 근로자일까 자원봉사자일까

중앙일보 2019.11.19 09:00
사찰에서 생활하며 적은 금액을 받으며 일하는 처사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사진 다음로드뷰]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사진 다음로드뷰]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박성규)는 모 사찰 내 법인이 “처사 A씨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용을 취소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졌다고 19일 밝혔다.
 

A씨, 사찰 내 재단에 소속돼 사찰 관련 업무 해와

 
소송을 제기한 재단법인은 경상북도 영천시의 한 사찰 내에서 약 10명의 근로자를 고용해 실내 납골당, 부도탑묘 관리업 등을 했다. 사찰은 회원들이 낸 불사금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A씨는 2015년 7월부터 약 3년 동안 해당 법인에 소속돼 사찰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해왔다. 처사들은 주로 공양간이나 법당 등 사찰의 곳곳을 청소·관리하고 부도탑묘 안치 보조 업무 등을 담당했다. 야간 순찰업무도 했다. 처사들은 이런 업무를 수행하고 보시금 명목으로 매달 100만 원을 받았다. 보시금은 불자들이 십시일반 내는 돈이다.
 
2018년 A씨는 “일을 하다 어깨를 다쳐 수술해야 한다”며 사찰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한 달 넘게 휴직을 했다. 사찰 측은 “휴직계에 기재된 병은 허위이고 이를 사직 의사표시로 봐야 한다”며 A씨를 퇴실 조치한 뒤 해고했다.  
 
이에 A씨는 자신이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요청했고 위원회는 이를 인정했다.
 

사찰 측 “처사 업무는 자율적 봉사활동”

 
재단 측은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재단은 “사찰과 법인은 별도의 단체고, A씨가 처사로서 한 업무는 자율적인 봉사활동에 불과하다”며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어 해고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보시금은 감사의 표시일 뿐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 “임금 목적으로 한 근로자 맞아” 

 
행정법원은 A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근로기준법상 A씨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일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재단이 사찰과 별도의 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사찰과 재단의 대표자가 동일했다. 벼룩시장 신문에 낸 구인광고도 같은 명의였다.
 
재단의 “처사들이 수행한 업무는 봉사활동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단이 처사들의 구체적인 근무내용과 장소, 시간까지 지정해주며 처사들의 업무수행과정을 지휘·감독했기 때문이다. 처사들이 매일 아침 출근기록부에 출근 시간을 기재하고, 한 시간 단위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더 나아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에게 해고사유를 통지할 때에는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는 2015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재단이 A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결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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