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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m 대기행렬 주인공···전생에 나라 구해야 산다는 운동화

중앙일보 2019.11.19 05: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지난 11월 8일 아침 한국 운동화 시장이 들썩였다. 최근 군대를 전역한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나이키와 협업한 운동화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가 당일 발매된다는 소식이 스니커즈 커뮤니티와 나이키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날 홍대 인근의 나이키 스니커즈 편집매장 ‘홍대 SNKRS’에는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이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약 400m 줄이 이어졌다.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사진 나이키]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사진 나이키]

나이키와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협업한 이번 제품은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지드래곤이 직접 참여한, 그것도 나이키와 함께 만든 운동화라는 점에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신발 측면에 ‘스우시’라 불리는 나이키 로고가 빨간색으로 색칠된 ‘코리안 익스클루시브’로 총 818족만 출시하는 한정판이었다. 지드래곤의 생일인 8월 18일에서 착안한 발매 수로 친구·가족을 위해 만든 노란색 스우시의 ‘프렌즈&패밀리 익스클루시브’는 88족만 출시됐다. 스니커즈 매니어 사이에선 이번 협업의 마지막 버전인 흰색 스우시 제품이 오는 23일 약 12만5000족 정도 전 세계에 판매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GD 운동화 출시에 400m 구매 행렬
재판매 가격 치솟아 470만원 넘어
명품 브랜드도 운동화 열풍에 가세
“희귀템, 구하기 힘든 만큼 애착 가”

자신의 패션 브랜드와 직접 그린 그림을 신발에 담아낸 지드래곤. [사진 나이키]

자신의 패션 브랜드와 직접 그린 그림을 신발에 담아낸 지드래곤. [사진 나이키]

 
운동화, 그의 패션 감각 보여주는 지표 
최근 운동화는 그 위상이 달라졌다. 운동용 신발, 편하게 신는 신발에서 패션 상품 중 가장 인기 높고 잘 팔리는 ‘잇템’(그 시기에 꼭 사야하는 상품)으로 신분이 격상했다. 투박한 어글리 슈즈 인기를 견인한 ‘발렌시아가’, AR기술로 신상품 운동화들을 모바일 앱을 통해 가상 체험하게 만든 ‘구찌’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도 운동화를 중요한 핵심 상품으로 다룬다. 덕분에 럭셔리 브랜드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꼭 사야 하는 제품도 가방에서 운동화로 바뀌었다. 100만원대 이하의 가격으로 해당 브랜드 제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인기는 점점 올라가는 추세다.
신발만 모아 놓는 방을 따로 꾸밀 정도로 신발을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만현씨는“400여 켤레의 신발 중 운동화 비중이 80%”라며 “요즘은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오히려 운동화를 신기 때문에 어떤 운동화를 신었느냐가 그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700 웨이브러너.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700 웨이브러너.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350 글로우. [사진 아디다스]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350 글로우. [사진 아디다스]

희소가치가 높은 운동화의 인기는 더 높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협업한 ‘나이키 조던’ 시리즈, 가수 칸예 웨스트가 만든 ‘아디다스 이지부스트’는 출시 때마다 매장 밖에 줄을 세우는 대표적인 운동화다. 프리미엄 스니커즈 편집매장 ‘분더샵 케이스스터디’의 성명수 바이어는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 ‘언더커버’ ‘피어오브갓’과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캇이 협업한 운동화들 모두 출시하는 족족 화제가 된다”며 “최근엔 한국의 뜨거운 스니커즈 사랑에 최근엔 제리 로렌조 등 아티스트들이 직접 한국에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운동화로 나이키와 패션 브랜드 ‘사카이’가 협업해 만든 ‘나이키 사카이 와플’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당첨될 수 있다’ ‘1000번을 클릭해도 당첨 안 된다’는 등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고, 재판매가는 정식 발매가의 3~5배가 넘는 50만~100만원대로 책정됐다. 
나이키 에어 피어오브갓. [사진 나이키]

나이키 에어 피어오브갓. [사진 나이키]

 
발매만 하면 5배는 기본…로또가 따로 없다
한정판 운동화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좀처럼 사기 힘들어 아예 ‘리셀(재판매) 시장’을 노리는 사람도 많다. 보통 이런 한정판 운동화가 발매되면 판매와 동시에 온라인과 스니커즈 커뮤니티에는 ‘리셀러’(재판매상)가 등장한다. 이번 지드래곤 운동화의 재판매 거래가는 발매 직후 200만~300만원대로 형성되더니 지금은 470만원 대를 넘겼다. 235mm처럼 발매 수가 적은 사이즈는 한때 700만~1000만원까지도 가격이 올라갔다. 구독자 11만명의 스니커즈 전문 유튜버 ‘와디’는 “칸예웨스트, 트래비스 스캇에 버금가는 한국인 지디의 파워를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며 “이번 지디 스니커즈의 리셀가는 스캇의 운동화를 넘어선 가격대”고 전했다. 
패션 브랜드 사카이와 나이키의 협업 스니커즈인 '나이키 사카이 LD 와플'. [사진 듀얼독]

패션 브랜드 사카이와 나이키의 협업 스니커즈인 '나이키 사카이 LD 와플'. [사진 듀얼독]

경매가 750만원까지 올라간 '키스x코카콜라X컨버스 척테일러 70'. [사진 컨버스]

경매가 750만원까지 올라간 '키스x코카콜라X컨버스 척테일러 70'. [사진 컨버스]

지난해 키스(KITH)·코카콜라·컨버스가 협업한 ‘척테일러 올스타 70s 하이’의 시제품은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 ‘스톡엑스’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모델을 반씩 잘라 붙인 커스튬 제품이 750만원의 경매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신발의 공식 출시 가격은 17만원이었다. 
“운동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그래도 힘들게 사는 만큼 더 애착이 생긴다.”
스니커즈 매니어인 게임회사 영업맨 홍모씨의 말이다. 청소년 시절 좋은 신발을 신는 친구들이 부러워 운동화에 욕심이 생겼다는 그는 30대 후반인 지금까지 한정판 운동화가 나올 때마다 온라인 사이트는 물론이고, 운동화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서울 시내 매장 4~5곳을 돌아다닌다. 
 
한정판 운동화 사려면… 
한정판 운동화는 어떻게 살까. 보통 온라인 홈페이지와 매장 응모권 발매, 매장 선착순 판매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성 케이스스터디 바이어는 “일단은 나이키·아디다스·케이스스터디 등 공식 판매 채널에서 진행하는 매장 응모권을 공략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최근 스니커즈 브랜드들이 매장 유입 고객을 늘리기 위해 매장에서의 응모권 발매·추첨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코’ ‘나코공홈’ ‘래플’ ‘드로우’ ‘리셀’ 등은 ‘희귀템’ 운동화를 사려면 꼭 알아야 하는 용어들이다. 스니커즈 매니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래플'(rapple)과 ‘드로우’(draw)는 운동화를 살 기회를 받기 위한 응모권이나 응모권 배부 방식을, ‘리셀’(resell)은 자신의 운동화를 되파는 재판매를 뜻한다. ‘드코’ ‘나코공홈’은 드레스 코드·나이키공식홈페이지의 줄임말이다. ‘이번 OOO 모델의 드로우가 오늘 오전 11시부터 나코공홈과 매장 시작된다. 현장 래플 받으려면 드코는 같은 모델 운동화, 상하의 모두 나이키’라는 식이다.

현장 선착순 판매로 특별한 신발이 발매될 때는 어김없이 발매 전날 밤부터 매장 옆에 대기자 줄이 생기는데 이때는 처음 도착한 '1번'이 자체적으로 관리자 역할을 대신 한다.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캠핑’이 수월하도록 1번이 대기자 리스트를 만들고 2~3시간 단위로 시간을 끊어 한 번씩 출석 체크를 한다.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근처에 있다가 출석 체크 할 때 현장에 다시 와야 한다. 만약 이때 현장에 오지 못하면 리스트에서 제외된다. 
무엇보다 발 빠르게 발매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이를 위해 포털 사이트의 스니커즈 커뮤니티 카페 ‘나이키매니아’ 가입은 필수다. 대다수의 발매 정보와 제품 정보를 이곳에서 모두 얻을 수 있다. 최근엔 주요 운동화 브랜드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발매 정보를 갑자기 공지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인스타그램 계정의 알림 설정도 반드시 해놔야 한다. ‘월간 스니커즈’ ‘와디의 신발장’ ‘스니커쉐프’ 등 스니커즈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들도 다수 등장해 한정판 운동화 리뷰, 수월한 구매 팁 등의 정보를 전하고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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