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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난동 환자 다독인 전공의 '말빨 스킬'

중앙일보 2019.11.18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3)  

환자가 난동을 부렸다. 치료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약물을 투여하려 하자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거칠게 도리질 쳤다. 내가 자길 죽이려 한다는 게 이유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다.
 
"내가 보호자가 없다고 그러는 거지? 무슨 주사 놓으려고? 수면제 놔서 재우려는 거 모를지 알고? 재워놓고 죽을 때까지 온갖 실험을 다 할 속셈이지?"
 
응급실에서 환자가 난동을 부렸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살리려고 치료하고 있다고 해도 도통 믿지를 않았다. 이대로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니 빨리 집에 보내 달라고 했다. [사진 pixabay]

응급실에서 환자가 난동을 부렸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살리려고 치료하고 있다고 해도 도통 믿지를 않았다. 이대로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니 빨리 집에 보내 달라고 했다. [사진 pixabay]

 
환자는 주사기 든 간호사 손을 뿌리쳤다. 하마터면 찔릴뻔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환자는 수동적 저항으로 부족했는지 손으로 침대를 흔들며 적극성을 과시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살리려고 치료하고 있다고 해도 도통 믿지를 않았다. 당장 자기를 내보내 달라고 했다. 이대로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니, 빨리 집에 보내 달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병원 온 지 겨우 2시간. 벌써 섬망이라도 생긴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휴.
 
"이보세요. 환자분. 심장이 멎었어요. 초음파 보여줄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당신 심장이 안 뛴다고요. 다리 쪽에 기계 보이시죠? 저게 지금 심장을 대신하고 있어요. 기계만 끄면 그대로 심장이 멎는단 얘기에요. 근데 어딜 가겠다고요?"
 
안 믿는단다. 심장이 멎었는데 자기가 살아있을 리 있겠냐고. 거짓말하지 말란다. 안 속는단다. 죽어도 상관없으니 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린다. 입씨름하다 보니 속에 천불이 난다.
 
"아니 진짜 자살 방법도 여러 가지네.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라서 오만가지 자살 시도를 겪었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기계 끄면 심장이 멎는데, 지금 그렇게 해달란 거죠? 이대로 죽어버리겠다? 오케이. 그럼 진짜 이대로 기계 끕니다? 준비됐어요?"
 
대답을 안 한다. 한 번 더 물었는데 역시나 대답이 없다. 사리 분별력 없는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내가 자길 마취해서 죽일 거라고 의심하는 모양인데. 가만 생각하니 다시 부아가 치민다. 대체 나를 뭐로 보고. 환자는 또다시 시끄럽게 굴기 시작했다. 거보라며. 역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게 맞았다며. 자기 눈이 정확했다며 계속해서 나를 싸이코 박사 취급을 했다.
 
잠시 후 환자는 중심 정맥에 넣어둔 링거 주사를 스스로 뽑아버렸다. 어려웠던 시술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땀 흘려 확보한 혈관이었다. 주사가 빠진 구멍으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다. 환자는 의기양양했다. 링거를 뽑았으니 이제 마취제를 놓을 수 없을 거라며. 너희 계획은 이제 실패했다며 비아냥거렸다. 마침내 나는 인내력이 바닥났다.
 
"아 XX 죽든가 말든가!"
성큼성큼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코를 씩씩대며 흥분을 삭혔다. 그렇다고 환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전공의를 대신 보냈다. 성질머리 나쁜 사람이니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그냥 환자 상태만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라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아야겠다. 손해가 크지만 어쩔 수 없지. 이대로는 치료를 할 수가 없으니까.'
 
난동 환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전공의를 대신 보냈다. 자리로 돌아온 전공의에게 말싸움 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토닥였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고분고분 치료에 따르고 있단다. [사진 pixabay]

난동 환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전공의를 대신 보냈다. 자리로 돌아온 전공의에게 말싸움 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토닥였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고분고분 치료에 따르고 있단다. [사진 pixabay]

 
마음을 가다듬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궁리하는 사이 30분이 흘러갔다. 전공의가 자리로 돌아왔다. 말싸움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토닥였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환자가 아주 얌전하단다. 고분고분 치료에 따르고 있단다. 믿기질 않았다. 말도 안 돼! 나는 단걸음에 뛰어들어갔다. 환자는 나를 보더니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이 저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님이십니까?"
말문이 막혔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머리만 긁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환자가 갑자기 착해진 거냐?"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였을 거라고 했더니…."
"요놈 말빨 쩌네."
 
나중에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전공의가 환자 곁에서 온갖 정성을 다했단다. 차분히 얘기도 들어주고 애 보듯이 달래주었단다. 하나도 없다는 보호자가 어디서 나타났나 싶을 정도였단다. 그렇게 30분이 지나니 환자가 온순한 양이 되었다고 한다.
 
'아! 전공의가 나(교수)보다 훨씬 낫구나!'
부끄럽다. 대체 이 중환자실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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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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