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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샤프 하나에도 민감한데…입시 들쑤셔서야

중앙일보 2019.11.18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박형수 교육팀 기자

박형수 교육팀 기자

“수능 샤프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똑딱 소리가 너무 크고 심은 계속 부러져 시험 치다 ‘멘탈’이 나갔다.”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직후 ‘오르비’ ‘수만휘’ 등 수험생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연이어 올랐다. 교육부는 2012학년도 수능부터 작년까지 사용하던 샤프를 올해 다른 회사 제품으로 교체했다.
 
어른의 눈엔 별일 아닌 듯한 수능용 샤프 교체에 수험생들은 이처럼 민감했다. 한 수험생은 “국어영역 4페이지를 풀 때부터 심이 뚝뚝 부러졌다. 채점해보니 4쪽부터 주르륵 틀렸다”고 한탄했다. 다른 응시생은 “수학 시간 샤프심 갈아 끼우느라 최소 5분은 썼는데 긴장감 탓에 손에 땀이 나서 그런 것 같다. 10점은 떨어진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소동의 진짜 원인은 샤프가 아니라 수능에 있지 않을까. 수시 모집이 대폭 확대되는 등 입시 지형이 크게 변했지만, 수능은 수험생에겐 여전히 대학 진학이 달린 중요한 시험이다.
 
극도의 긴장 속에 시험을 치르는 어린 학생 중엔 ‘수능 실패=인생 실패’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채점 결과를 보니 암울하다. 내 19년 인생의 한계치가 이 정도라니 살기 싫다”는 식의 댓글이 이어지는 이유다.
 
서울의 한 사립고 진학부장은 “비록 해프닝에 그치긴 했지만, 수능 샤프를 둘러싼 수험생의 혼란은 수능이 지닌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수능은 모든 수험생이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고, 맞춘 만큼 성적을 받는다. 교사조차 왜 붙었는지, 떨어졌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비하면 선명하고 투명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0.1점 차이로 줄 세우는 수능은 수험생들을 극단적인 경쟁에 내몬다. ‘시험 한 번으로 깔끔하게 판가름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수험생 입장에선 사소한 실수가 ‘인생을 망칠 것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공언했고, 교육부는 이를 전제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학생·학부모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급증한 학종의 비율을 제한하고 개선하는 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학종은 안되니까 수능”이란 태도 역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올해로 도입 27년째를 맞는 수능은 2000년대 이후 거의 해마다 ‘불수능’ ‘물수능’을 오가는 ‘널뛰기 난이도’로 혼란을 빚고 있다. 지금껏 발생한 출제 오류만 8차례에 이른다.
 
‘수능 업그레이드’를 위해 교육부는 절대평가화, 논·서술형 문항 도입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연구는 외국 사례를 참조하는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 국민 여론은 수능이 학종에 비해 ‘그나마’ 공정하다는 것이지, ‘수능만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정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문제가 불러온 불신을 정시 확대 기조로 덮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육부가 수시·정시 논란에서 벗어나 여태껏 강조해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교육’에 걸맞은 새로운 대입, 개선된 수능을 내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박형수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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