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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때려라. 욕해라"…위자료 증액 전략 된 폭행 고소장

중앙일보 2019.11.17 09:00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1.
“내가 우스워? 당장 보따리 싸갖고 나가. 애미, 애비도 없어? 나는 아들 그렇게 안 키웠어. 어디다 대고 머슴 노릇을 시켜?”

 
“야, 부부가 아니라 룸메이트랑 살아도 너처럼 X같이 하면 쫓겨나. XX”
 
3년 전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던 A씨는 남편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살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사용할 돈으로 A씨의 아버지가 10억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어머니·시누이·남편은 1시간 넘게 심한 욕설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를 모두 녹음한 A씨는 며칠 뒤 미국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두 사람의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A씨는 남편과 그 가족이 자신에게 한 행동을 '사실혼 부당파기'로 보고 지난해 7월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A씨는 또 녹음 파일을 증거로 세 사람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남편 역시 아내 A씨를 무고 혐의 등으로 맞고소했다. 맞고소장엔 "무고한 나를 허위사실로 고소했다"는 내용과 함께 "부인(A씨)이 내 450만원짜리 카메라를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 횡령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동부지법은 최근 A씨 남편과 시어머니·시누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시어머니는 벌금 400만원, 시누이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남편은 A씨에 대한 허위 맞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벌금 700만원을 받았다.
 
#2.
B씨도 4년 전부터 사이가 틀어진 남편을 고소했다.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은 B씨를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졌다.
 
B씨는 남편에게 맞을 때마다 스마트폰 녹음 버튼을 눌러 상황을 기록했다. 그리고 부서진 물건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쳤을 땐 상해진단서도 끊어뒀다.
 
그리고 이혼 소송을 내면서 남편을 고소했다. 최근 서울동부지법의 다른 재판부는 B씨 남편에 대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벌금형만 나와도 의미 있는 판결”

이혼 소송을 내면서 상대방을 폭행죄로 고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A·B씨 사례처럼 위자료를 구하는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나를 때린 상대방에 대한 합법적인 보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혼 전문 최경혜(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이혼 사건이 형사 사건으로 번지는 사례가 10건 중 1건은 되는 것 같다”며 "원칙적으로 폭행 등 사유는 재산 분할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지만, 이혼 자체나 위자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보통 폭행·상해·재물손괴 등으로 고소하는데, 상대방에 대한 벌금형만 나와도 위자료를 청구하는 데 의미 있는 판결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증거 수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A·B씨도 녹음 기록과 사진을 이용했다.
 
이혼 전문 김신혜(YK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혼에 대비할 거면 증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이혼을 결심한 의뢰인에겐 '일단 증거를 모아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부부가 싸울 때는 감정이 격해져 얼마를 주겠다는 식으로 이혼 조건에 동의했다가도, 소송 중에는 말이 바뀔 때가 있다”며 “이럴 때를 위해 의뢰인에게 꼭 녹음하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 역시 “재판 과정에서 사실조회 절차를 통해 증거를 수집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판부가 채택해줘야 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고소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두고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간이 지나 나를 때린 상대방을 고소 해도 이혼 소송땐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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