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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98%가 일시금 수령, 제구실 못하는 퇴직연금

중앙일보 2019.11.16 14:00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43)

퇴직연금제 가입자 가운데 연금을 수령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18년 퇴직급여 수급을 개시한 29만6372계좌에서 연금수령을 선택한 비율은 6145계좌(2.1%)에 불과하며, 29만227계좌가 일시금 수령을 선택했다. 한마디로 계좌 기준으로 보면 퇴직연금제에서 연금이란 단어를 빼야 할 정도로 낮다. 하지만 퇴직급여 수령액 기준으로 보면 전체 5조 9002억원 중에서 21.4%(1조 2643억원)가 연금으로 수령하고 있어 어느 정도 기능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여 혼란스럽다.
 
[자료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홈페이지]

[자료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홈페이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평균수령액이다. 일시금을 선택한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597만원이었고, 연금을 수령한 계좌의 적립금은 2억 575만원이다. 한마디로 일시금 수령자는 연금 수령자의 7.8%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적립금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연금 수령비율이 턱없이 낮은 이유는 1597만원밖에 안 되는 돈으로 무슨 연금 효과를 보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의 적립금이 터무니없이 적어 연금으로 나눠 받기가 민망한 지경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퇴직연금제가 의미 있는 적립금을 유지해 연금으로 받게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수익률이 낮은 것도 그렇지만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도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는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에 대해 나름대로 제한 조건을 두고 있다. 그 조건은 ①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②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③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요양비용을 가입자가 부담하는 경우, ④ 담보를 제공하는 날부터 거꾸로 계산해 5년 이내에 가입자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⑤담보를 제공하는 날부터 거꾸로 계산해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⑥그 밖에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 등이다. 여기서 중도인출은 전부인출과 부분인출이 가능하지만 담보대출은 적립금 50% 내에서만 가능하다.
 
2017년 중도인출 인원은 2016년 대비 29.2%(4만명→5만2000명) 증가했고, 인출 금액은 38.4%(1조 2000억원→1조 7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원 기준으로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이 41.3%, 장기 요양이 26.3%, 주거 임차 보증금이 22.3%, 회생 절차 개시가 10.1% 수준이었다. 연령별로 20대는 주거 임차, 30대와 40대는 주택 구입, 50대와 60대 이상은 장기 요양 목적의 중도인출이 가장 많았다([그림2] 참조).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그런데 [그림2]에서 30대에 주거 관련 중도인출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것이 퇴직급여 수령액을 푼돈으로 만드는 핵심 원인이다. 자산운용을 할 수 있는 적립금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적립금을 온전히 보전해 연금으로 받으려면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외에도 우리나라 근속연수가 5년 안팎으로 적립금의 IRP(개인퇴직연금제) 이전을 강제해 놨지만, 해지는 무대책이라 직장을 이동할 때마다 적립금이 쌓이기 힘들다.
 
그럼 퇴직연금 선진국인 미국은 어떠할까? 미국은 사망, 영구장애 및 긴급자금 수요 발생에 한해 중도인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해당 사유별 인출 한도를 별도로 설정해 필요자금 한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출을 허용한다. 그리고 담보대출을 우선시하고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중도인출이 이뤄지도록 해 제도 가입 기간 중 적립금을 소진해 버리는 중도인출의 피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적립금을 지키기가 어려운데도 가입자가 운영을 잘못해 퇴직연금제가 연금으로서 우리나라 3층 노후복지의 한 축을 담당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까? 퇴직연금제도가 도입 초기에는 중도인출이나 담보대출 요건이 이리 방만하지 않았다. 퇴직연금 수령자 통계가 시사하는 것은 퇴직연금이 제구실을 하려면 가입자의 적립금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초연금액 저소득수급자가 받는 월 30만원을 5년간 받는다면 총금액은 1800만원이 된다. 그런데 일시금 수령자 평균 적립금이 1597만원이라는 통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퇴직연금제를 연금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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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필진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고령화하는 나라입니다. 100세 시대를 온전히 살아가려면 자산을 연금화해 오래 쓰도록 해야 합니다. 퇴직연금제를 활용하는 개인이 늘고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활용도는 낮은 수준입니다. 퇴직연금제는 앞으로 수 년 내 직장인의 가입이 의무화될 뿐 아니라 모든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개방될 전망입니다. 미국에선 우리의 퇴직연금제에 해당하는 401K 도입으로 월급쟁이 연금 부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후생활의 안착을 책임질 퇴직연금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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