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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난 보랏빛 산부추꽃 집으로 모셔왔더니…

중앙일보 2019.11.16 08:00

[더,오래] 한순의 시골반도시반(12)

주말이 다가올 때마다 짐을 꾸리던 파란 체크무늬 가방 손잡이에 때가 꼬질하게 끼었다. 내용물이 다 빠진 가방은 지퍼가 열린 채 옆으로 널브러져 편안하게 쉬고 있다. 이틀 뒤면 저 가방에 세탁된 수건을 넣고, 속옷을 넣고, 커피설탕을 넣고, 갈라진 발뒤꿈치에 바르는 약을 넣고 와구와구 무엇들을 넣은 다음 꾹꾹 눌러 지퍼를 채울 것이다. 그리고 쫓기듯 배가 뚱뚱한 가방을 차에 싣고 시골집으로 달린다.
 
시골집에는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 서울에서 가라고 내쫓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허둥지둥 시골집을 향해 밥도 거르며 달려간다. 시골 어느 귀퉁이에 있는 보리밥집에 앉아 때늦은 점심을 먹을 때도 있다. 시골집이 부르는 것인가, 우리가 달려가는 것인가?
 
시골집에 들어서면 바깥 수도 가까이에 옮겨 심은 산부추꽃이 나를 반긴다. 지난해 초가을쯤 내 키의 서너 배쯤 되는 커다란 참나무 숲에 서 있다가 참나무 사이에는 어떤 식물이 사는지 궁금해졌다. 나무가 너무 커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 키 작은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사가 꽤 심한 곳에 발을 눌러 딛고 고개를 숙이다 깜짝 놀랐다. 보라색 원형의 꽃이 기품 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산부추꽃은 세거나 강하거나 뽐내지 않았다.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가파른 언덕일지라도 뿌리를 내렸다. 살면서 사람 속의 악을 자극하지 않고, 선을 자극하는 산부추꽃처럼 살고 싶다. [사진 한순]

산부추꽃은 세거나 강하거나 뽐내지 않았다.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가파른 언덕일지라도 뿌리를 내렸다. 살면서 사람 속의 악을 자극하지 않고, 선을 자극하는 산부추꽃처럼 살고 싶다. [사진 한순]

 
그늘에 낮게 피는 다른 꽃들보다 키가 훨씬 크고 가늘고 곧게 뻗은 꽃대와 난초처럼 기품 있게 옆으로 떨어뜨린 이파리는 숲속 공간을 평정시키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산부추꽃의 아름다움에 넋을 뺏긴 채 조금 더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더 떨어진 뒤쪽에 또 한 촉이 피어 있고 그 뒤쪽으로 또 한 촉이 피어 있었다. 작은 꽃들이 모여 원형을 이루고 있는 산부추꽃은 작은 꽃과 꽃 사이가 벌어져 있어 그 빈 공간을 숲의 허공이 채우고 있었다.
 
그 산부추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나만 몰래 올라와서 살짝 보고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 꽃을 본 순간 숲에 싸하는 상쾌한 공기가 한 번 더 지나가는 듯한 기억은 참 신비한 경험이었다. 산부추꽃이 피어 있는 숲의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내려온 나는 이틀이 되지 못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남편을 데리고 다시 산부추꽃이 있던 곳으로 갔다.
 
남편 역시 그 아름다움에 경이로워했다. 남편이 내려가고 나는 그곳에 서서 이 꽃이 왜 이렇게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지 느껴보려 했다. 산부추꽃은 세거나 강하거나 뽐내지 않았다.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가파른 언덕일지라도 뿌리를 내렸다. 꽃이 피는 와중에도 꽃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숲의 공기가 지나가게 했다. 산부추꽃의 모양새와 역할이 산부추꽃의 의도인지 신의 의도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저 신선한 산부추꽃은 내 안의 선을 자극했다. 기품 있는 아름다움으로 놀라게 하고,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뭔가 착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보기엔 아까워 남편을 이곳에 데려오게 했다. 고요하고 상쾌한 숲에서 혼자 기도 같은 말을 웅얼거렸다.
 
“저는 살면서 사람 속의 악을 자극하지 않고, 선을 자극하는 산부추꽃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결국 산부추꽃에 대한 사랑을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한 촉을 파내어 반그늘이 지는 우리 수돗가로 모셔왔다. 숲에서 한 언약을 집 가까이에서 늘 상기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산부추꽃의 난초 같은 이파리는 축 늘어지고 아침저녁 나는 산부추꽃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소하러 가다가도 들여다보고, 설거지하면서도 창밖으로 산부추꽃의 상태를 살폈다. 나의 애타는 마음을 알았는지 여러 날이 지나자 산부추꽃은 이파리를 몇 개 떨어뜨리고 나서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뒤섞인 여러 날이 지나자 마당에 내 삶의 화두처럼 보랏빛 촛불 한 자루가 켜졌다.
 
보랏빛 촛불 앞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웃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심히 산부추꽃 근방을 지나다닌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것은 밥이다. 서울에서 쌀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시골에서 쌀이 줄어드는 속도가 몇 배 빠른 듯하다. 서울에 오면 발바닥과 다리가 아팠다. 시골집에서는 머리가 움직이지 않고 발바닥이 움직였다는 말이었다.
 
쫓기듯 도시를 떠나고 쫓기듯 자연을 떠나는 생활의 반복이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도시가 주는 속도에 밀려 달을 쳐다볼 시간도, 꽃을 찾아가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사진 pxhere]

쫓기듯 도시를 떠나고 쫓기듯 자연을 떠나는 생활의 반복이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도시가 주는 속도에 밀려 달을 쳐다볼 시간도, 꽃을 찾아가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사진 pxhere]

 
나에게 집이란 숲이 있고 나무가 있고 상추가 있고, 홀로 고독하게 나무를 바라보거나 햇빛과 마주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 장소다. 나는 이곳 시골집에서 내가 자란 유년 시절 집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
 
쫓기듯 도시를 떠나고 쫓기듯 자연을 떠나는 생활의 반복이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저토록 예쁜 보랏빛 촛불도 겨울로 접어들면 고개를 꺾는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내가 도시에 있어도 꽃은 피었을 것이며 달도 기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도시가 주는 속도에 밀려 달을 쳐다볼 시간도, 꽃을 찾아가는 시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도시에서는 도시가 보내는 무언의 속도에 나도 발맞춰야 한다. 그들이 보내는 절박한 속도를 무시하고 태연자약한 행보를 한다면 몹시 무례하게 보일 것이다.
 
꽃을 보아도 시간은 흐르고, 꽃을 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른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꽃이 진다. 진실만큼 허무한 것이 없고, 허무한 것만큼 진실한 것이 없다.
 
나는 매주 주말이면 파란색 체크무늬 가방을 들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도피처로 가고 있는가, 안식처로 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도피처인가, 안식처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도피처인가, 안식처인가?”
 
모든 생명을 무심하고 평등하게 덮어주는 흰 눈이 나무에 하얗게 쌓여 있다. 우리 동네 촌장님은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린다고 말한다. [사진 한순]

모든 생명을 무심하고 평등하게 덮어주는 흰 눈이 나무에 하얗게 쌓여 있다. 우리 동네 촌장님은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린다고 말한다. [사진 한순]

 
봄, 여름, 가을, 겨울 색깔도 다른 교과서가 사방으로 포진해 있는 곳이 자연이다. 매년 친절하게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나이만큼 반복해서 가르쳐준다. 허무를 가장한 욕망의 씨앗을 떨어뜨리면, 이를 이미 알기라도 하듯 두더지가 땅을 파고 다녀 포슬포슬한 땅을 만들어 씨앗을 받고,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새가 쪼아 먹을까 봐 바람이 땅을 스치며 씨앗을 덮어준다. 이에 씨앗이 얼세라 낙엽이 그 위로 떨어져 이불을 덮어주는가 하면, 누구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무심하고 평범한 세월을 보내야만 그곳에서 한 생명이 올라온다.
 
내가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아주 적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잘 모르므로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잘 모르므로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안식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배움이란 끝이 없는 먼 길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안식처와 도피처는 도시에도 있고, 시골에도 있다. 친구에게도 있고, 내 속에도 있다. 그러나 꼭 권하고 싶다. 자연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주 자연에 갈 것을. 우주홍황이 자연 속에서, 내 안에서, 산부추꽃 안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서로 바라보며 거울처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무에 하얗게 덮여 있다. 흰 눈이. 모든 생명을 무심하고 평등하게 덮어주는 흰 눈이. 우리 동네 촌장님은 말했다. “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한 3년은 걸려”라고. 저 흰 눈 녹은 내년에 나는 나무를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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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한순 시인,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필진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 노후에 들어선 사람은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예전에 밑줄 치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인생 후반부에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될지 모른다. 흔들리는 대로 나를 맡겨보자. 또 퇴직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온다. 이럴 때 책 읽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돼 줄 수 있다. 출판사 대표가 인생 후반부의 필독서는 어떤 게 있고 책 읽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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