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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동백꽃은 누가 피우나

중앙선데이 2019.11.16 00:20 661호 34면 지면보기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쟨 좀 박복하잖아.” 사람들의 편견은 가혹하다. 편견이라는 감옥에 갇힌 여자의 이름은 동백.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동백을 따라 울고 웃는다. 시청률 20%가 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비결이 뭘까. 동백은 세속적 성공 기준으로 보면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고아에다 30대 중반의 미혼모로 술집을 운영하며 산다. 동백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우직한 연하남 용식의 투박해 보이는 ‘돌직구 사랑’이 동백꽃을 피운다.
 

험악한 말, 비열한 말, 다양한 거짓말 난무
가짜 넘치는 세상, 진짜 보고픈 소망 투영

“남 탓 안 하고 아이 잘 키우면서 치사하게 안 살고… 남들보다 착하고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다들 우러러보고 박수쳐야하는 거 아닌가요?”
 
용식의 대사에 동백은 눈물을 보이고 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독백과 함께. 소설이 그렇듯 드라마도 허구다. 소설, 영화, 드라마가 가공의 예술인 것은 작가도 알고 관객도 안다. 가공이란 허구, 즉 가짜라는 얘기다. 완전한 가짜는 아니다. 현실의 어디에선가 본 것 같고,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그걸 믿고 관객은 작품이 허구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시간과 금전을 지불하고 그 속에 들어간다. 마치 실제 벌어지는 일인 것처럼 느끼며 자신의 희로애락을 등장인물과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끄는 데는 현실의 세태도 그 배경으로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드라마가 하나의 작은 세트라면,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세트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극 중 극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가짜가 넘치는 현실에서 진짜를 좀 보고 싶은 소망이 시청률 고공행진에 반영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캐릭터와의 만남, 그 소망을 작품 속에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자기의 생일조차 모르는 동백에게 용식은 이렇게 말한다.
 
“생일 모르면요 맨날 생일로 하면 돼요.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릴게요. 동백씨의 34년은요, 충분히 훌륭합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또 사람을 살리는 것도 말이다.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그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린다.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칭찬은 또 하나의 밥이다. 우리 사회는 그 밥이 부족한 것 같다.
 
험악한 말, 비열한 말, 공격적인 말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가족 안에도 있고, 작은 집단에서도 발견된다.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분위기다. 누구든 걸리면 죽는다는 살벌함까지 느껴진다. 거짓말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도 난무하지만 최근 미국 소식이 대단하다. 미 국무부 부차관보 자리까지 올라간 한인 출신 여성은 타임지 표지 모델을 ‘가짜 스펙’으로 꾸며냈다고 한다. 그 발상과 추진력만큼은 놀라워 보인다. 너무 극적이라 마치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기까지 한다. 누가 진짜이고 어디까지 가짜일까.
 
관객들이 작품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작품 안과 밖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 그러다 혹시 가짜를 놓고 진짜라고 관객들끼리 다투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걸 대비해 작가가 적절하게 작품 어디엔가 허구를 눈치챌 수 있는 장치를 배치해 주면 좋겠는데 아마 그걸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그런 배려는 자칫 흥행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흥행사의 관심에서 배제될 것이다.
 
관객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듯하다. 작품을 충분히 즐기면서 일상의 현실로 무사히 돌아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자의 마음속에 동백꽃 한 송이를 피워보는 것은 어떤가.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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