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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니가 가라 하와이

중앙선데이 2019.11.16 00:20 661호 35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위 제목은 널리 알려진 대로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 대사 중 하나다. 유오성(준석)이 장동건(동수)에게 “너 하와이에 잠시 가있으면 안 되겠냐? 하와이에 있다가 잠잠해지면 내가 부를게”라며 피신을 권하자 상황을 눈치챈 장동건이 특유의 썩소를 날리며 이렇게 말한다. “니가 가라 하와이.”
 

험지 출마, 야권 통합 놓고 남탓만
자기희생 없인 민심 얻기 어려워

당시 중고생들이 조폭 흉내를 내며 주고받던 유행어가 18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이번엔 정치권, 그것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다. 당내 초·재선 의원들이 ‘3선 이상 중진 험지 출마론’을 제기하자 영남 지역 출마설이 도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이 한마디로 맞받았다. “지금 한국당에 험지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 그런 얘길 하려면 ‘나는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먼저 말하라”면서다.
 
실제로 요즘 한국당 의원들을 만나 보면 딱 ‘니가 가라 하와이’ 분위기다. 한쪽에선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진들이 먼저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당사자들은 “나만큼 지역구에서 경쟁력 있는 의원이 누가 있느냐”며 꿈쩍도 안한다. 지도부는 속앓이만 할 뿐이다. “여당은 중진도 아니고 초선 의원들이 잇따라 불출마 선언을 하는 판에 보수 텃밭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로 3선 이상 했으면 뭔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게 당원의 도리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당직자도 적잖다.
 
물론 중진이라고 해서 모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리인을 선택할 권한은 당 지도부나 동료 의원들이 아니라 유권자에게 있다. 국회가 원만히 운영되려면 다선 국회의장도, 정치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도 필요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의원 배지를 달면서도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여의도의 오랜 정설이다. 3선이면 도합 12년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의 기득권에만 집착하면 설령 당선되더라도 정치 인생은 사실상 그걸로 끝이라는 게 한국 정치의 냉엄한 경험칙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통합 논의도 ‘니가 가라 하와이’의 또 다른 버전이다. 자기 입장은 바꾸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양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결국엔 공천권 다툼인 셈인데, 그렇게 타협한 결과 알짜 지역구는 양당 정치인들이 다 나눠먹기해 놓고 신진들에게는 남은 자리 중에 고르라고 하면 어느 국민이 감동하겠는가. 오죽하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이래서는 보수 야당 빅 텐트는커녕 빈 텐트가 되고 말 것”이라고 일침을 놓겠는가. 사즉생, 생즉사. 이는 정치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명제다.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대의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2030세대의 국회 진출은 이미 최대 화두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어느 당이 먼저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요즘 유행어처럼 “저 당이 저만큼 했어? 그럼 우리는 그거 묻고 더블로 가!”라며 자기희생 경쟁을 벌여도 민심이 받아줄까 말까 할 텐데 여전히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하와이 타령만 하다가는 방콕(방에 콕 박혀 지내는) 신세 되기 십상이다.
 
장동건은 영화에서 “니가 가라 하와이” 말고도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여러 명대사를 낳았다. “마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많이 먹지 않았느냐. 그만해라).” “내가 니 시다바리가(내가 너의 종인 줄 아느냐).” 2019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그들의 대리인인 국회의원과 직업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18년 전 영화 대사와 어쩜 이리 똑같은지 이 또한 웃픈 아이러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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