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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vs 지리산, 백운산 vs 백운산 … 이 산이 아닌가 봐

중앙선데이 2019.11.16 00:20 661호 28면 지면보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에는 해발 109m 국사봉이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인천 옹진, 전북 임실에도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국사봉이라는 ‘산’은 총 43개. 같은 이름이자 다른 산, 동명이산(同名異山)이다.
 

■ 전국 1400개 산 중 동명이산 371곳
100대 명산 중 산 이름 겹치는 두 곳
지리산, 설악산과 국립공원 1호 경쟁
통영 지리산, 398m지만 만만치 않아

광양 백운산, 지리산·다도해 한눈에
동강 백운산은 굽이굽이 절벽 절경

봉화산이란 동명이산의 나열이 가장 길다. 47개가 곳곳에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은 4440개. 동명이산은 봉화산·국사봉에 이어 옥녀봉(39개)·매봉산(32개)·남산(31개) 순이다. 산악인들이 꼽은 1400대 산 기준으로 동명이산은 371곳에 이른다. 1400대 산 중에는 지리산(2개)·백운산(11개)·감악산(3개)·소요산(2개) 등 이름난 산도 복수가 많다.
 
산 이름은 풍수와 무속, 불교와 유교의 영향이 크다. 생김새와 역사·설화를 바탕으로 동네 사람들이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겹치는 명칭이 많다.
 
 
국사봉은 봉천동, 고양 성사동 등 43곳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두 개 이상 이름을 가진 산은 두 곳. 이 지리산과 지리산, 백운산과 백운산을 들여다봤다.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 산 이름을 입력한 뒤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이 산이 아닌가 봐”라고 할지도 모른다.
 
 

지리산 vs 지리산

탄다. 일부 산악인들은 이 말을 금기시한다. ‘탄다’에는 사람이 주(主)고 산은 객(客)이 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산을 잠시 빌릴 뿐, 그 위에서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동사 앞에는 ‘불’이라는 명사가 붙기도 한다.
지난 8일 경남 통영 사량도의 지리산. 옥녀봉 출렁다리 너머 사량도 상·하도를 잇는 사량대교가 보인다. 통영 지리산 산행은 대부분 종주 형태로 서쪽의 돈지리에서 동쪽의 금평리로 방향을 잡는다. 김홍준 기자

지난 8일 경남 통영 사량도의 지리산. 옥녀봉 출렁다리 너머 사량도 상·하도를 잇는 사량대교가 보인다. 통영 지리산 산행은 대부분 종주 형태로 서쪽의 돈지리에서 동쪽의 금평리로 방향을 잡는다. 김홍준 기자

사량대교에서 바라본 경남 통영 지리산 전경. 지리산의 원래 이름은 지리망산인데, 대부분 등산객들은 '망'자를 빼고 부르면서 지리산으로 굳어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사량대교에서 바라본 경남 통영 지리산 전경. 지리산의 원래 이름은 지리망산인데, 대부분 등산객들은 '망'자를 빼고 부르면서 지리산으로 굳어지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남 통영 지리산은 타고 있었다. 예년만 못하다지만 단풍의 끝물이다. 지리산은 계절의 한끝에서 빠져나가 다른 계절로 달리고 있었다. 단풍은 물든 게 아니라 겨울을 나기 위해 물을 빼는 비움의 행진곡이다. 빠져나간 초록의 물은 사방의 바다로 흘러들어 바다의 푸름을 더했다. 그렇다. 여기는 섬. 사량도다. 섬은 곧 산이다. 예전 산행 일기를 빌리자.

 
‘2014년 10월 5일. …사량도다. 상도·하도를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발 398m. 높이가 그 지리산(1915m)의 5분의 1 정도지만 하늘을 이고 있는 등줄기의 장쾌함은 그에 못지않다. 버스에서 산을 바라봤다. 걸어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산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산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 또한 ….’
 
그새 상도·하도를 잇는 다리는 완공됐고 하도의 칠현산에서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옥녀봉 출렁다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통영 지리산의 원래 이름은 지리망산. '바라보다 망(望)'자가 들어갔다. ‘망’은 어느새 유실돼 지리산으로 불리지만, 육지의 지리산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전남과 전북·경남 3개 도에 자리 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기자가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남과 전북·경남 3개 도에 자리 잡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기자가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전경. 오른쪽 우뚝하게 솟은 곳이 천왕봉이다. 김홍준 기자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전경. 오른쪽 우뚝하게 솟은 곳이 천왕봉이다. 김홍준 기자

내륙의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다. 1967년 12월 29일에 지정됐다. 당시 ‘1호’ 자리를 놓고 설악산과 경합했다. ‘국립공원 30년사’에 의하면 그해 공원법이 제정됐고 새해로 넘어가기 전에 국립공원을 지정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풍경을 대표할 수려한 자연 경관지’가 지정 요건이었다. 설악산이 1호가 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강원도 수복지역에 있는 설악산 근처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고 불발탄이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국방부의 이런 의견에 주무부처인 건설부가 1호를 지리산으로 지정했다. 이 와중에 우종수(지리산악회)를 대표로 한 구례군민의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청원 운동도 큰 몫을 했다. 설악산은 1970년 3월에야 ‘5호’ 국립공원에 지정됐다.

 
지리산은 속 깊다.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물으려 하자 그 명인은 이곳에 몸을 숨겼다. 고운 최치원이 홀연히 사라진 곳이다. 의적도, 빨치산도 몸을 숨겼다. 넓다. 둘레가 850리(334㎞)다. 천왕봉, 노고단, 벽소령, 피아골 등등은 지리산의 부속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이름난 터일 정도로 너른 품이다. 지리산에서의 온전한 해맞이는 쉽지 않다. 2박 3일 종주 치성을 드렸지만, 부족했나 보다. 다음으로 미룬다. 대신 빛나는 햇볕이 드는 곳, 광양으로 눈길을 돌린다. 백운산이 어깨에 힘을 주고 있었다.
 

백운산 vs 백운산

백운산에 가기 위해 검색하다 보면 다른 백운산들을 숱하게 보게 된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하얀 구름’의 운집을 보려면 광양으로 달려가야 한다.
전남 광양 백운산 상봉에서 바라본 운해. 백운산에서는 지리산의 등줄기가 훤히 보였다. 김홍준 기자

전남 광양 백운산 상봉에서 바라본 운해. 백운산에서는 지리산의 등줄기가 훤히 보였다. 김홍준 기자

전남 광양의 백운산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백운산에서는 내륙의 지리산과 다도해가 보인다. 사진=광양시청

전남 광양의 백운산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백운산에서는 내륙의 지리산과 다도해가 보인다. 사진=광양시청

광양 백운산(1218m)은 전라남도에서 지리산에 이어 가장 높다. 호남정맥의 완성품이다. 섬진강 550리(216㎞) 길의 매듭이다. 10㎞ 지척에 지리산 등줄기가 훤히 보인다. 백운산 휴양림에서 도솔봉 능선으로 오르다 보면 폭신폭신한 흙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어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데, 백운산 정상이 보여 손에 잡힐 듯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어느새 새로운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형태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봉우리들을 등산인들은 ‘공갈봉’이라고 부른다. 순식간에 구름이 일었다. 70여 년 전 빨치산은 이 구름과 섬진강의 안개로 몸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지리산도 몸을 숨겼다. 빨치산처럼, 구름은 사라졌다. 지리산이 보였다.

 
백운산은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 종이 있다.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하다. ‘태양의 땅’인 만큼 단풍도 곱다. 다도해를 굽어볼 수 있다.
강원 정선·평창에 걸쳐 있는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한 굽이. 서울에서 가는 동선 상에는 다른 백운산들도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 정선·평창에 걸쳐 있는 백운산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한 굽이. 서울에서 가는 동선 상에는 다른 백운산들도 있다. 김홍준 기자

동강 백운산 정상(왼쪽 봉우리)에서 칠족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절벽과 이웃한다. 곳곳에 '추락 위험' 경고문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동강 백운산 정상(왼쪽 봉우리)에서 칠족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절벽과 이웃한다. 곳곳에 '추락 위험' 경고문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광양 백운산이 바다와 이웃한다면, 동강 백운산(882m)은 강을 끼고 있다. 서울에서 가려면 어지간히 품을 들여야 한다. 광양 백운산과 함께 흙길 위주의 육산이다. 하지만 정상~칠족령 구간은 앙칼진 바윗길이 이어진다. 뭉툭하되 까슬한 북한산 바위와 달리 삐죽하되 미끌하다. 발바닥에 불날 각오는 해야 한다. 이 앙칼진 바위들은 왼편(하산 기준)의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곳곳에 ‘추락 위험’ 간판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절벽은 위험과 장관의 하모니다. 

 
경남 김해엔 393m 높이 백두산이 …

동강 백운산 등산객들이 접근의 어려움을 마다치 않는 이유는 이 장관에 있다. 동강은 굽이굽이 그 자신이 수만 년간 빚은 절벽과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이 장관은 모든 난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동강산장 지기가 “하산 때 길을 주의하라”고 말한 것처럼 등산로를 단단히 익혀놔야 한다. 어느 길은 동강 앞에서 끊긴다. 되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첩첩산중에 갇히지 않으려면.
 
100대 명산, 100대 섬&산 등 주제를 담고 산행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번 가을·겨울엔 동명이산 시리즈는 어떨지. 참고로, 북녘의 백두산과 같은 이름의 산이 393m 높이로 경남 김해에 자리 잡고 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산이 뭐지? 나라마다 기준 다르고 개념 모호
영화 잉글리쉬 맨

영화 잉글리쉬 맨

휴 그랜트 주연의 ‘잉글리쉬맨’은 1910년대 언덕을 산으로 만들려는 어느 마을의 분투기다. 당시 영국의 산 기준은 1000피트(305m). 이 마을의 '뒷산'은 299m. 주민들은 6m를 높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현재 영국은 2000피트(610m) 이상, 미국은 1000피트 넘는 봉우리를 ‘산’으로 정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면적 80%가 고도 600m를 넘으면서 고도차가 600m 이상 나는 곳’으로 구체화했다.
 
국내에서는 통일된 기준이 없다. 산림청은 2007년 남한의 산이 4440개라고 발표했다. ‘재·치(티)·고개’는 제외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2017년 7414개라고 밝혔다. 고시된 산 및 지형도에 이름 오른 산이 대상이었다. 10m 이하도 이름이 있으면 산이 됐고 수 백m가 되더라도 큰 산에 속한 ‘무명’은 산이 안 된 경우도 있었다.
 
산림청은 입목이 생육하는 토지를 산지로 규정한다. 1992년 건설부는 1㎢ 내 고도 차가 100m 이상, 해발 200m 넘는 곳을 산지로 봤다. 백과사전은 '평지보다 돌출된 지형'으로 두루뭉술하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고서저 지형이란 점도 산을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발 900m가 넘는 강원 태백시는 영국 기준으로는 산이다.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한반도의 산지 분포는 매우 복잡해 산을 300m 이하로 규정할 경우 뚜렷한 경향성을 찾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산을 700m 이상으로 규정하면 주요 산과 산의 연속성이 나타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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