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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반대 8000명 탈당"···정의당 데스노트 기준은 당원수?

중앙일보 2019.11.15 16:51
진중권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진중권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1. ‘조국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9월 23일. 정의당 탈당계 제출 소식이 전해진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저녁 늦은 시각 통화가 이뤄졌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진 교수의 목소리는 낮고 힘이 없었다. ‘정의당 데스노트에 조국이 빠진 데 대한 실망 때문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짧은 침묵 이후 이렇게 답변했다. “뭐… 여러 가지예요. 그냥 세상이 다 싫어서…. 이쪽도 저쪽도 다 싫어가지고….”
 
#2.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10월 31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섰다. 자못 결연한 표정이었다. 연설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심 대표, 이번에 실망했어!’ 조국 정국에서 제 평생 처음으로 많은 국민들로부터 꾸중을 들었습니다.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하지 않고 외길을 걸어왔던 정당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심 대표는 “따가운 질책은 정의당에 대한 두터운 믿음과 기대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애정어린 비판과 격려를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두 장면이 돌연 기억 속에 ‘소환’ 된 건 14일 진 교수가 서울대 강연을 통해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을 당시의 뒷얘기를 밝히면서다. 진 교수에 따르면, 정의당은 당초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고 (진보 진영에서) 비판이 나오면 진 교수가 등판해 설득하기로 했었는데 당이 의견을 바꿨다고 한다. 진 교수는 “정의당에서는 조국 임명에 반대했을 경우 최소 8000명이 탈당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후원금이 끊어지고 비례대표를 받지 못하게 돼 작은 정당에서는 엄청난 수”라고도 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15일 정의당 핵심 당직자에게 물었다. 이 당직자는 “정의당이 조국 전 장관에 명확하게 반대 표명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것부터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 발언에 대한 당내 여론을 알고 싶다고 하자 “(조국 사태는) 이미 다 끝난 사안인데 (진 교수가) 다시 끄집어내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불편한 심기가 묻어나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정의당 당직자는 다소 결이 다른 얘기를 했다.  
진 교수는 당 입장이 바뀌어 탈당하려 했다는데?

당시 당내에 워낙 많은 얘기가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합의가 된 대목에서 나간 것인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다양한 경로에서 많은 논의가 오가지 않았겠나. 그런 과정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하나하나 확인해주는 것은 좀 어렵다.

당원 8000명이 줄고 후원금이 끊기는 것을 걱정했다는 얘기는?

당이 숫자 추산을 공식화하고 하나로 정리한 바는 없다. 워낙 많은 의견들이 쏟아지던 시기 아니었나. 그런 과정에서 나온 얘기 중 하나였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진 교수가 없는 말을 한 건 아니라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정의당은 친환경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등 선진적 복지 정책을 주장해 한국 사회 진보를 견인해왔다. 소수 정당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득권 구조를 깨려는 노력과 복지ㆍ노동 영역에서 다양한 의제를 던지며 우리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온 측면도 있다. 
 
‘조국 국면’에선 그러나 일부 진보적 인사로부터도 “정의당이 정의롭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 전 장관으로 대표되는 진보 기득권의 잘못에 대해선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진 교수도 한 명이었다. 최근 반등했다곤 하나, 조국 정국이 한창일 때 정당 지지도가 3위에서 4위로 밀린 이유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 (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 (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 애정어린 비판을 겸허히 받들겠다”던 정의당이 제대로 성찰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해진다. 정의당은 조국 국면에서도, 지금도 당의 숙원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을 위해 ‘계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의당이야말로 특권에 맞서온 정당 아닙니까, 당장 정치적 유불리에 따르지 않고 힘들지만 외길을 걸어왔던 정당 아닙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었다”는 심 대표의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고들 한다. 
 
익명을 원한 한 정치 평론가는 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정의당이 곱씹을 만한 것 같다. “정의당이 조국 국면에서 보인 선택지는 대의명분에서도, 정치적 실리 측면에서도 옳았는지 의문이다. 더 큰 당이 되려면 진 교수 같은 쓴소리를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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