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나라로 가고 있나

중앙일보 2019.11.15 00:40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진심일 것이다. 나쁜 보수 적폐 세력을 괴멸시켜 주류를 교체했고, ‘서초동 국민’의 외침을 받들어 검찰·교육 개혁에 착수했으며,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제거됐다”(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고 하니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다. “경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에서도 자기 확신이 느껴진다. 평균 재산 15억원(올 3월 현재)인 청와대 실세들이 구중궁궐에서 일하니 없는 자의 고단한 삶을 알 턱이 없고, “쌓아 두면 썩어 버린다”(고민정 청와대 대변인)고 나랏돈을 마구 퍼주며 담배꽁초 줍기 등으로 노인들 일자리를 늘리니 고용률은 올라가고, 빈부 격차도 해소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는 성공할까
분열적 민족주의는 극복할 수 있나
개혁을 빙자한 전체주의는 아닐까
대통령 ‘국민과 대화’ 에서 답해야

민심은 대통령의 시각과 조금 다르다. 국민은 적대적 두 진영으로 갈라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의와 공정은 붕괴했다. 자영업자들은 나자빠지고, 서민은 평당 1억 원짜리 미친 아파트값에 절망한다. 불꽃놀이를 하나 싶을 정도로 익숙해진 북한의 신형 미사일이 언제 서울로 떨어질지도 몰라 수시로 떨게 한다. ‘다시 무너지는 나라’의 현실이다.
 
2년 반이 지났건만 문재인 정권의 정체를 모르겠다. ‘혁신·포용·공정·평화’를 내걸지만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통치 이데올로기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정권은 진보라고 불린다. 경제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애써 감춘다. 소득주도성장 또는 포용성장은 1980~90년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좌파 사회당 정부가 했던 사회주의 경제와 흡사하다. 당시 미테랑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대기업 국유화를 강행하다 경제가 엉망이 되자 포기한 뒤 만성적인 실업과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공무원 감축, 해고 완화, 부유세 폐지 등으로 경제를 되살린 마크롱 대통령이 등장하기까지 30여년 동안 프랑스는 ‘유럽의 병자(病者)’ 취급을 당했다.
 
이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뿐 아니라 공무원 17만명을 왕창 뽑고,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려 하고, 세금을 짜내 분배 확대와 빈곤 해소라는 명분으로 나랏돈을 풀면 모두가 잘사는 ‘분수효과’가 나온다고 했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투자·소비·수출 등 경제 지표가 죄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제는 남미의 선심성 포퓰리즘까지 닮으려 한다. 자식들에게 빚 폭탄을 넘길 작정인지 나라 곳간을 텅텅 비우고 내년에만 60조원의 빚까지 내 500조원 예산을 흥청망청 쓰겠다는 재정 중독증에 걸렸다. ‘아니다’ 싶으면 접어야 하는데 경제를 이념으로 보고 밀어붙인다. 그러니 “강남 좌파(Gangnam Left)의 사회주의 실험으로, 아시아의 호랑이였던 한국 경제는 개집 안에 있는 신세(in the doghouse)”(블룸버그통신)라는 조롱을 듣는다. 사회주의의 고상함에 현혹되지 마시라. 나치 히틀러도 자신의 정치 조직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라고 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 정권은 민족주의에 집착한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경제’라는 감성적 구호를 호명하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종족민족주의로 묶으려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북한 주민에게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삶은 소대가리’ ‘남조선 집권자’라는 모욕을 참는 것은 포용적 민족주의를 중시하기 때문이리라.
 
이 민족주의가 한국에선 분열적으로 돌변한다. 정부에 반대하는 진영을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로 몰아 증오와 분노를 불러내고 적대시한다. 세계 12대 경제 대국이 3대 세습 젊은 독재자에게 굽신거리게 하는 민족주의가 배척의 도구로 변질한다. 민족주의에도 차별이 있다.
 
‘개혁’이란 미명 아래 전체주의로 흐르는 조짐도 보인다. ‘촛불’의 신탁을 독점한 듯 적폐 청산에 이어 사법, 검찰, 언론, 교육 등에 ‘개혁 대 반(反)개혁 반동’의 이분법을 들이댄다. 코드와 이념으로 묶인 자기편을 심어 조직을 장악한 사법 개혁이 그랬고, 다른 개혁들도 그럴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정권의 목적에 봉사하는 전체주의적 개혁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제도가 뒤집히고 멀쩡한 특목고가 사라져도 비교적 조용하다. ‘제왕적 청와대 정부’를 개혁하라는 비판은 묵살되고, 하나 됨을 강요당하는 공기가 지배한다.
 
문 대통령이 장담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경제적 사회주의, 분열적 민족주의, 획일적 전체주의가 뒤섞여 혼란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시장에 굴복한 프랑스를 뛰어넘어 ‘우리식 사회주의’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인가. 남과 북,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민족주의를 고집하겠다는 것인가. 개혁을 빙자해 꿈틀거리는 전체주의를 방관할 것인가. 선상 반란 살인범일지라도 고문과 처형이 자행될 걸 뻔히 알면서도 북한으로 강제 추방하는 비인도적 처사를 보면 인권을 입에 달고 사는 진보 정권이 맞는지조차 의문이다.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 원초적 질문들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을 듣고 싶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