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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그런 줄 아시고요는 소통 아니다

중앙일보 2019.11.15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역대 로마 황제 가운데 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3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전쟁터나 정쟁 일선에서 사망했다. 고대 로마 의술이 좀 더 발달했다면 말 위에서 칼을 차고 사망한 왕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리스크를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걸 당연하게 여겨서다. 영국 왕자가 전쟁터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최전방을 날아다닌 건 결국 같은 얘기다.
 

문 정부, 통합에 노력했다지만
자화자찬·남탓 국민분열 불러
코드고집으론 국정표류 못막아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와는 꽤 많이 동떨어졌다. 우린 사실상 대통령 무책임제다. 선출된 왕이어서 역대 대통령은 ‘누가 뭐라든 내 맘대로 한다’는 권력 사유화가 판박이였다. 쫓겨나거나 총에 맞거나 감옥 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누구 하나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한, 우리만의 독특한 대통령 문화는 여기서 비롯됐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먹힌 건 이젠 민의와 상식이 통하는, 과거와 다른 정치를 해보자는 기대감이 커서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그랬다’거나 ‘앞으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그냥 등장인물이 다른 박근혜 정부 시즌 2라고들 보고 있다. 이 정부 들어 할 때마다 참사였던 인사가 내 맘대로고, 코드 고집과 국론 대분열이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다. 심지어 내 책임을 돌아보지 않는 남 탓 처방마저 닮았다. 지금 정부는 야당 시절 그걸 “유체이탈”이라고 맹폭격하더니 욕하면서 닮았다.
 
조국 전 장관은 자진 사퇴한 게 아니다. 사실상 국민에 의해 강제로 끌어내려졌다. 국민이 두 쪽으로 갈라져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몰려간 건 대통령의 인선과 고집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젠 검찰 소환까지 보태졌다. 그렇다면 뭔가 매듭 짓는 국면 대전환이 나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송구하다’는 표현으로 슬쩍 넘어갔는데 내용을 보면 송구한 것도 아니었다. 올바른 결정이었지만 일부 국민의 반대로 조국 찬성과 반대 시위가 격돌해 ‘결과적 갈등’이 일어났다는 취지였다. ‘국민통합에 많이 노력했다’면서 ‘정치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야당을 겨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 실정으로 진보를 단합시킨 건데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도 같은 이유로 보수를 단합시킨 거란 말이 나오는 건 이런 남 말 하는 듯한 화법 때문이다. 약속이나 다짐이 공감을 얻고 힘을 가지려면 실제 행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남이야 뭐라든 말든 그냥 고집을 부리면서 그저 감성에만 호소한다고 영이 서는 건 아니다. 물론 왕조시대엔 ‘왕은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게 보통법이었지만.
 
트루먼 대통령 보좌관 출신으로 대통령학 권위자인 리처드 뉴스타트 전 컬럼비아대 교수는 오랜 분석 끝에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력’이라고 결론냈다. 설득이란 진정성과 소통에서 출발하고 결국 자기희생에서 만들어진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었다. 지금 청와대는 조국 사태 후 100일이 지나도록  두 동강 난 나라를 그냥 먼 산 보듯 한다. 그리곤 여전히 코드 국정이다. ‘그런 줄 아시고요’라면서 내사람 내 방식만 고집하는 건 통합과 공존의 소통이 아니다.
 
간디의 평소 좌우명은 ‘내 삶이 곧 내 메시지’(My life is my message)였다. 로마의 왕들이 줄줄이 전쟁터로 향한 건 위험한 걸 몰라서가 아니다. 정말로 뭔가를 바꾸려면 개혁의 선두에 선 사람이 강력한 명분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선의를 갖고 있어도 거만하고 독단적인 태도로 나오면 그가 하는 선한 일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반감만 불러일으킨다고, 청소년 시절 누구나 읽는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엔 적혀 있다.
 
임기 절반이 남았다.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주문한다. 올바른 처방은 정확한 진단에서 나온다. 아직도 ‘내 책임’ 사과가 출발점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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