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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들어간 선거법 ‘동상이몽’… 관통할 ‘신의 한수’ 있나

중앙일보 2019.11.14 05:00
‘게임의 룰’ 협상이 반쪽짜리 결말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약 2주 만에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은 회동을 가졌지만 패스트트랙 법안(선거법·공수처법·수사권조정법)과 관련해선 다시 빈손으로 헤어졌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다양한 ‘신개념’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 협상에서 처음 풀어야 할 쟁점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배분 문제지만 이날 협상은 입구조차 찾지 못하고 끝났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안 외에도 민주당에선 ‘240석·60석’, ‘250석·50석’안 등이 얘기되고 있다. 아이디어 차원에선 지역구 200석·비례대표 100석으로 하는 대선구제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지만 한국당에 숫자 이야기를 꺼내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12일 2주만에 한 자리에 앉은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그러나 선거법 협상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임현동 기자

지난 12일 2주만에 한 자리에 앉은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그러나 선거법 협상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임현동 기자

 
회동 결과는 예고된 일이었다. 이 모임에 앞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인영 원내대표는 “오늘부터 큰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못하면 국회는 대치 국면에 빠져들 수도 있다”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이 정해놓은 패스트트랙 일정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직후 기자들과 만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반응은 냉담했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의 불법성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 안 한다”고 했다. 현재까지 한국당의 당론은 ‘비례대표 폐지와 지역구 270석’이다. 같은 날 오후 기자와 만난 이 원내대표는 “지금 그 난리(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를 치고 여기까지 와서 270대0을 고집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조금이라도 서로 양보하면서 접점을 찾을 생각 해야 최소한의 합리성이라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급할 게 없다'는 나경원

그러나 이 원내대표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나 원내대표에겐 비합리적 선택일 수 있는 상황이다. 13일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한 나 원내대표는 “공수처와 비례대표제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여권의 무도함에 대해서 역사가 똑똑히 기억하고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로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정치적 실익이 적을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안은 군소정당에 유리한 법안으로 민주당이나 한국당으로선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이야 군소정당들의 협조를 받아야 통치 가능하다는 현실적 요구가 있지만 한국당엔 그럴 동인이 없다. 여당이 더 급한 처지란 의미다. 나 원내대표의 원내대표 임기가 12월 첫째 주까지란 점도 변수다. 원내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나 원내대표가 자신의 임기 내에 선거법 협상을 해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당의 동상이몽

이 원내대표는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 간의 물밑 접촉이 진행 중이다. 협상은 크게 두 개의 채널에서 진행되고 있다. 각 당 원내대표와 실무책임자가 함께하는 ‘3+3’ 협의체와 각 당 대표가 지정한 책임자들이 모이는 정치협상회의 채널이다. 민주당에서 정치협상회의 채널은 윤호중 사무총장이 맡고 있다. 현장에서 이탈표나 불출석자를 감안하면 구두 합의 과정에서 160석 정도를 확보해야 본회의 의결이 가능한 구조지만 협상 창구를 열어놓은 제 세력의 셈법조차 복잡하게 갈라져 있다.
 
정의당은 민주당이 현재 본회의 상정을 기다리고 있는 ‘심상정안(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에서 크게 후퇴하지 못 하게 하는 게 최대 관심사다. 최근 심 대표의 의원정수 10% 확대와 의원 세비 30% 삭감 주장을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크게 줄이면 안 된다는 압박”(민주당 핵심당직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은 “의원정수 확대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숫자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임현동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임현동 기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임현동 기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임현동 기자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유승민 대표. 임현동 기자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유승민 대표. 임현동 기자
유성엽 대안신당 임시대표. 김경록 기자
유성엽 대안신당 임시대표. 김경록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변선구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변선구 기자
 
민주평화당은 정의당과 비슷한 수준의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이유가 다르다. 평화당의 핵심인사는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비례성도 중요하지만 지역 대표성이 무너져선 안 된다는 게 평화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합의의 틀을 깨는 것은 부담되지만 비례성 확대가 자신들이 전북지역에서 갖는 이점을 침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배어있는 말이다.
 
평화당에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호남기반 세력인 대안신당(가칭)의 입장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유성엽 임시대표는 “비례성 강화라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지역구 조정은 면적이 넓고 인구가 희소한 농촌과 중소도시의 대표성이 깨지지 않도록 대도시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지붕 두 가족’ 상태인 바른미래당은 입장이 뭔지도 알기 어려운 상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앞장서 왔던 손학규 대표의 의사는 김관영 의원을 통해 정치협상회의에 전달되고 있지만, 유승민 전 대표와 함께하는 오신환 원내대표와 유의동 의원은 ‘3+3’테이블에서 다른 얘기를 한다. 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합의 처리’가 담보되지 않으면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오긴 어려울 것”이라며 “시간상 새로운 제도 도입은 불가능한 상황이니 지금 제도에서 지역구를 조금 줄이고 비례대표를 조금 늘리는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한국당을 배제한 채 160석 확보가 가능한 안을 만들어내더라도 막상 본회의에서 통과될지 불안할 수도 있다. 지역구가 사라질지 모르는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어서다. '게임의 룰'은 선거법을 제2당인 한국당을 배제한 채 통과시키는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개정선거법 부결된다면 현행 법대로

문희상 국회의장은 12일 "패스트트랙 법안을 12월3일 이후에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라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선 사실상 데드라인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때까지는 새 선거법이 도입 여부가 결정돼야 선거구 획정 협상에 들어갈 수 있고 4월 총선이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한국당을 배제한 합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민주당에서도 "또 한 번의 파국이 다가오고 있다"(한 중진 의원)는 전망이 나온다. 그 시점까지 조정을 거친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부결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당에선 이미 "(패스트트랙 법안 강행 처리 시) 의원직 총사퇴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부결되면 현행 선거법(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에 맞춰 선거구 획정에 들어가게 된다. 인구비례에 따른 지역구 조정은 있겠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는 유지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전두환 정부 때도 합의로 통과시키는 게 관행이었는데 그것 마저 힘들어진 국회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임장혁·성지원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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