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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가 초밥 맛 떨어뜨려" 日성차별 맞서다, 33세 여성 집념

중앙일보 2019.11.14 05:00
 
'나데시코 스시'의 치즈이 유키 점장이 초밥을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

'나데시코 스시'의 치즈이 유키 점장이 초밥을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

'나데시코 스시'의 점장 치즈이 유키씨가 초밥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페이스북]

'나데시코 스시'의 점장 치즈이 유키씨가 초밥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페이스북]

 

女초밥장인의 '나데시코 스시'
차별과 편견 맞서 10년째 영업
메이드복 입고 초밥 만든 적도
점장 "여성의 평생직업 됐으면"

일본에서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통하는 초밥(스시) 업계.
그런 고정관념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고, '여성 초밥장인'의 기치를 올린 초밥집이 '나데시코 스시'다.  
'오타쿠의 성지'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개점,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영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가게는 문을 열 때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여자들이 초밥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선 "여성은 손바닥 체온이 높아 밥위에 얹는 재료가 상한다" "여자들의 생리가 미각에 영향을 미친다" "화장품 가루가 초밥에 떨어진다" 등 근거없는 낭설이 떠돌았다. 초밥장인은 당연히 남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워낙 강했던 탓이다.
 
이같은 차별과 편견 속에서 여성 초밥장인들이 일해온 지 10년, 이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데시코 스시'의 점장 치즈이 유키(33)씨가 최근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 초밥장인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외국 여성에게 초밥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 '나데시코 스시'의 치즈이 유키 점장 [페이스북]

외국 여성에게 초밥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 '나데시코 스시'의 치즈이 유키 점장 [페이스북]

 
치즈이씨에 따르면, 한 남성 샐러리맨은 함께 온 사장에게 "사장님, 초밥이 먹을만한지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만든 초밥을 조롱한 것이다.   
남성 손님으로부터 "너는 뚱뚱하니까 다른 여자로 바꿔줘"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은 직원도 있다고 한다.  
개점 초부터 들어왔던 '화장품 가루나 머리카락이 초밥에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요즘 세상에 가루가 떨어지는 화장품은 없으며,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남녀의 차이는 없다"고 항변했다.    
동종업계의 따가운 시선도 여전하다고 한다. 한번은 남성 초밥장인이 술집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여자에게 "나는 안먹을테니 네가 다 먹어"라고 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만드는 초밥은 정통 초밥이 아니다"라는 다른 남성 초밥장인의 비꼬는 말투에 치즈이씨는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이런 발언이야말로 초밥장인으로서 당신의 자부심을 해치는 건 아닌가"라고 맞받아쳤다.    
 
치즈이씨는 초밥장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정한 뒤 다니고 있던 백화점을 그만두고 도쿄 아사쿠사의 한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년간 일했지만 홀 서빙의 일 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오랫동안 일했던 여직원도 기껏해야 새우 껍질을 벗기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커다란 '벽' 앞에서 여성 초밥장인이 되겠다는 꿈은 몽상처럼 느껴졌다.      
 
여성 초밥장인들의 공간을 표방한 '나데시코 스시'가 개점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여성 초밥장인이 탄생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여성들이 만드는 초밥은 세트메뉴 등 정해진 메뉴 뿐이었고, 조리와 재료 조달 등 중요한 일은 여전히 남자들이 했다. 
아키하바라의 지역 특성상 화려한 여성들이 초밥을 만들면 화제가 될 것이라는 게 당시 '나데시코 스시'를 운영하던 회사의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처음엔 화제를 끌며 번창했고 언론 보도도 이어졌지만, 2개월 정도 지나며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다.
남성 초밥장인들과의 갈등으로 가게를 떠나는 여성 종업원들도 생겨났다. 
치즈이씨는 "당시 고객의 요구에 따라 메이드 복을 입고 초밥을 만들기도 했다"며 "초밥장인이 아닌 여성으로서 소비되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  
 
남성 중심의 초밥업계를 바꿔보겠다는 초심으로 돌아온 치즈이씨는 당시 점주에게 여성들이 질 높은 초밥장인으로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골자의 개혁안을 냈다. 그리고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초밥집에서 조리 과정 등을 꼼꼼히 배웠다. 신선한 생선 구입처도 소개받아 직접 재료 조달에 나섰다. 
처음엔 여자라는 이유로 상대조차 안해줬던 생선 도매상도 있었지만, 치즈이씨의 열의에 감복해 거래를 터줬다고 한다.  
여성 초밥장인을 놀리고 바보 취급하거나, "건방지다"며 불평하는 손님들과 말다툼도 하지만, 치즈이씨는 "여성 초밥장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버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참아낸다"고 했다.
가게의 한 남성 단골손님은 "생각해보면, 여자가 요리를 한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 말 걸지 말라는 듯 손님들에게 근엄한 표정만 짓는 남성 초밥장인들의 가게보다 더 즐겁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여성 초밥장인이 만든 초밥 [치즈이 유키 페이스북]

 
'나데시코 스시'의 가장 큰 특징은 초밥을 그릇에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담아내는 솜씨다. 시각적으로도 맛있는 초밥이다. 치즈이씨는 미술계 전문대에서 배웠던 디자인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초밥 학교를 만들어 초밥장인을 목표로 하는 여성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고 했다. 일본 초밥업계가 아직도 남성 중심의 규칙들에 지배되고 있어 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이 전부 해외로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치즈이씨는 "초밥장인의 일이 여성에게도 차별과 편견이 없는,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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