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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흉악범이라고 귀순자를 함부로 다뤄도 되나

중앙일보 2019.11.14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주일 대사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주일 대사

매년 정초, 사형제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조촐한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서 한국이 사실상 사형 집행을 그만두게 된 것을 평가하면서 법적으로도 사형을 공식 폐지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한다. 사형제 폐지의 전 세계적인 추세를 본다면 한국의 경우 사실 특별히 자랑으로 내세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필자는 대한민국이 이룬 여러 가지 성취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 혐의 탈북자 2명 강제로 추방
인권 가치에 역행, 진상 꼭 밝혀야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에 관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주일 대사 시절 만난 일본의 전직 법무 대신이 한국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의 행형(行刑)제도 때문이었다. 그는 재직 시절 한 명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다.
 
사형 반대 인사들의 정초 모임 때마다 필자가 참석자들에게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이 있다. 대북 인도 지원 사업을 위해 방북 기회가 많은 인사들이다. 필자는 그들이 북측 인사를 만나면 남한이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남한에서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했다는 사실을 꼭 전하라고 당부한다. 우리의 가치를 북측에 최대한 알리라는 취지다. 필자가 만난 북측 상대역은 남한에 관해서 잘 아는 인사였다. 심지어 남한의 정치·경제는 물론 연예계 소식도 정통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말은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형하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달았다. 필자는 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가, 그리고 세계적으로 문명국의 척도 중 하나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에게 진지하게 설명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 한국 내부에서 토의가 있을 때는 필자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갖고 북한을 압박하거나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더구나 통일을 추구하는 것 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일도 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북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도 있다.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북한에 알리는 것이 긴 안목에서 보면 화해와 교류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전에 햇볕 정책에 관한 토론이 자주 있었다. 필자의 생각은 우리가 추구하는 햇볕이 『이솝 우화』에서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외투를 강제로 벗기려는 것이라면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없으리라는 지적도 했다. 햇볕을 통해서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순수한 햇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필자가 되풀이해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통일을 추구할지라도 우리의 통일이 정치적인 어젠다가 아닌 사람에 관한 어젠다여야 한다는 점이다. 햇볕은 그저 추운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살인을 많이 저지른 탈북자 두 사람을 한국 정부가 닷새 만에 서둘러 북한으로 비밀리에 강제 송환한 사건이 논란이다. 정부 측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흉악범’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송환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많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대부분의 탈북자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이 땅에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탈북자들이 남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한가. 혹시 그 ‘흉악범들’은 현실에서 가해자라기보다 더 가혹한 환경의 피해자는 아니었나.
 
사형제를 폐지한 유럽은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라 범죄 혐의자를 타국에 인도할 때 자국의 기준, 특히 사형제 폐지에 위배되지 않는 처우를 조건으로 단다. 그런 면에서 이번 비밀 강제 송환은 여러모로 심각한 의문과 문제를 남겼다.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주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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