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정호의 문화난장] ‘작은 거인’ 김수철이 못다 부른 노래

중앙일보 2019.11.14 00:27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꼭 30년 전이다. ‘작은 거인’ 김수철(62)은 1989년 가을을 잊을 수 없다. 현대무용 ‘불림소리’(안무 최청자)로 대한민국무용제(현 서울무용제)에서 대중음악인 처음으로 음악상(작곡상)을 받았다. 가요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이른바 클래식(국악) 동네의 텃세가 극심한 때였다. 김수철은 87년 같은 무용제에서 ‘0의 세계’로 심사위원 전원 찬성으로 음악상에 선정됐으나 한낱 대중가수라는 이유 하나로 수상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불림소리’ ‘0의 세계’ 모두 그해 대상(작품상)을 받으며 화제가 됐지만 말이다. 87년 민주화 선언으로 상징되는 사회 전반의 변화 바람이 음악·무용계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무용음악 ‘불림소리’ 30년
국악·서양약기의 첫 협연
지금 들어도 생동감 넘쳐
100인조 대형 무대 꿈꿔

 
지난 9일 토요일 밤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불림소리’가 다시 올라갔다. 서울무용제 40주년을 기념하는 역대 걸작선 세 편 중 하나로 ‘불림소리’가 뽑혔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이 없었다. 원작 1시간 공연을 20분 하이라이트로 축약했음에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대립과 갈등, 화해가 생생했다. 먼먼 옛날 태곳적부터 있어온 억압과 저항의 강렬한 몸짓이 메아리쳤다. 인간과 신의 고단한 만남이 울려 퍼졌다. 피리·대금·아쟁·징·꽹가리·가야금 등 국악기와 드럼·베이스·키보드·신시사이저 등 서양악기를 버무린 김수철의 음악이 객석을 조였다, 풀었다 자유자재로 끌어갔다. 쿵쿵~, 심장을 울려대는 지구촌 타악기의 향연도 비장감을 더했다.

 
현대무용가 최청자(74)는 30여 년 전 작곡가 김수철을 눈여겨봤다. 그의 노래와 음악에 깃든 한(恨)의 정서를 주목했다. 시대에 억눌린 이들의 외침 소리를 김수철에게 의뢰했고, 최씨는 이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춤사위를 짰다. 최씨는 “한국 무용계에서 대중음악가를 기용한 건 처음이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구슬픈 면모를 김수철에게서 봤다. 우리 대중의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부탁했다”고 돌아봤다.

 
제40회 서울무용제 역대 걸작선으로 공연된 ‘불림소리’. 한국 무용의 오늘을 집대성 한 이번 행사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계속된다. [사진 옥상훈]

제40회 서울무용제 역대 걸작선으로 공연된 ‘불림소리’. 한국 무용의 오늘을 집대성 한 이번 행사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계속된다. [사진 옥상훈]

‘불림소리’는 안무가 최씨에게 효자 상품이 됐다. 우리의 몸짓과 소리가 세계로 퍼져갔다. 동남아는 물론 미국·유럽 등 해외 공연만 100회를 넘어섰다. 한국 현대무용 중 외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최씨는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더 갖겠다고 아우성치는 ‘있는 자’와 쌀 한 톨 없어 배고파 못 살겠다는 ‘없는 자’ 얘기를 80년대 한국 정치 현실을 떠올리며 동작을 만들어갔다. 기대 이상으로 외국에서도 통했다. 사람 사는 모양이 어디나 비슷한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불림소리’ 30돌을 맞은 김수철의 감회도 각별했다. 무대 인사를 마치고 내려온 그를 만났다. “실연 무대는 저도 30년 만에 처음 봤다. 가슴이 뭉클했다. 미술 이상봉, 연출 손진책 등 당시 스태프도 대단했지만 저로선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첫 실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림소리’의 성공에 자신감을 찾고 97년 ‘불림소리Ⅱ’ 음반을 냈고, 또 이를 확장시켜 98년 대표작 ‘팔만대장경’을 완성했다. “‘불림소리’ ‘팔만대장경’은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도 매일 곡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작곡가 김수철과 안무가 최청자.

작곡가 김수철과 안무가 최청자.

김수철은 무모한 도전가다. 돈 잘 버는 인기 가수에서 갑자기 돈 안 되는 국악 작곡가로 돌아섰다. 우리 소리를 멀리하는 문화 풍토에 대한 반성에서였다. 그간 내놓은 음반 37장 가운데 25장이 국악음반이다. 모두 자비로 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영화 ‘서편제’(1993) 주제곡 ‘천년학’ 같은 메가 히트작도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87년 그의 첫 무용음악이자 국악앨범 1집인 ‘0의 세계’도 발매 1주 만에 폐기처분 수난을 겪어야 했다.

 
김수철은 몽상가다. 지금도 국악·서양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100인조 초대형 공연을 꿈꾸고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감이 충분하다”고 했다. 9일 ‘불림소리’ 무대 뒤편 중앙에 놓인 소품 하나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큼지막한 사람 손 두 개가 관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김수철 국악 인생과 함께 춤출 이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무용 용어로 불림소리는 ‘좋아’ ‘얼씨구’ 등 서로 흥을 돋우려고 외치는 소리를 뜻한다. 판소리의 추임새 비슷하다. 기자도 달리 보탤 건 없어도 한마디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화자, 잘한다.”
 
박정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