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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비전 포럼] “일본에 배상 받지 말고 사과·참회 요구하자”

중앙일보 2019.11.14 00:18 종합 29면 지면보기

위기의 한일관계 연속 진단 <15>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아세안(ASEAN)+3 회의 직전 대기실에서 만나 11분간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후로도 양국 관계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등을 둘러싸고 해법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냉각 상태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아세안(ASEAN)+3 회의 직전 대기실에서 만나 11분간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후로도 양국 관계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등을 둘러싸고 해법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냉각 상태다. [연합뉴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갈등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시한(23일 자정)이 임박했다. 12일 열린 ‘한일 비전 포럼’ 15차 모임의 참석자들은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 “한국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대신 일본의 참회와 사과를 요구하자”는 제안에 공감했다. 20여년간 강제징용 소송을 이끌어 온 최봉태 변호사는 압류된 일본 기업 국내 자산의 현금화 조치 상황을 설명하며 “최근 정부와 원고인단이 만나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수출규제·지소미아 3종세트가 한·일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적·경제적·영구적인 채권자 입장에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방안을 만들자.”

최봉태 변호사 발제문 요약
최봉태

최봉태

2000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첫 재판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1심에선 시효 문제로, 2심에선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에 반하는 판결을 할 수 없다는 논리로 패소했으나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이듬해 7월 하급심에서 가집행을 조건으로 일본 기업에 금전 지급을 하라는 승소 판결이 났다. 이 때부터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가능해졌으나 변호인단은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제집행을 신청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화해를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강제집행으로 피해자들이 금전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상대방의 자존심을 자극하면 사과를 받긴 더 힘들어진다. 그 뒤 6년간 기다렸다.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야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간 것은 생존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강제집행을 안 해 구제를 못받은 상태에서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변호사 입장에선 형사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법원은 양국간 외교 현안인 강제집행에 신중한 모습이다. 바로 현금화 절차를 시작해도 일본 기업 국내 자산(주식·특허권 등)의 실제 가치를 감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연내는 힘들 것이다.  
 
피해자와 변호인단은 한·일 정부간 본격 협의가 시작되면 강제집행을 당분간 중단한다는 데 합의해 있다. 강제집행은 신청주의라 법원에 요청하면 무리하게 집행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정부·기업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법률가들이 나서서 차분히 설득하고 조금씩 여론을 바꿔야 일본 정치권도 움직일 것이라 본다. 강제징용 소송만 문제가 아니다. (일본 기업이 아니라)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일본군 위안부 손해배상 재판이 남아 있다. 이 부분도 미리 해결해야 한다.
 
12일 열린 ‘한일 비전 포럼’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아래 뒷모습은 왼쪽부터 신각수 전 주일 대사, 이근관 서울대 교수. 김경록 기자

12일 열린 ‘한일 비전 포럼’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아래 뒷모습은 왼쪽부터 신각수 전 주일 대사, 이근관 서울대 교수. 김경록 기자

▶이원덕 국민대 교수=현금화 조치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임박한 게 아니라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걱정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정부의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여러 진전된 제안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는 꿈쩍도 안 한다. 문재인 정부와는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비관적으로 보인다.
 
▶이근관 서울대 교수=국제법 이론으로는 원칙적으로 조약이 국내법에 우선한다. 또 그 행위가 설령 독립된 사법부의 행위라 할지라도 국가에 책임이 발생한다는 게 국제법 원칙이다. 국내적 시각은 물론 국제적인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복안(複眼)이 필요하다. 라틴어 법언 중 ‘숨뭄 유스, 숨마 인유리아(Summum ius, summa iniuria)’라는 게 있다. 법률가의 좁은 시각으로 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면 심대한 부정의(不正義)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과 인권이 중요하지만 실제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 방정식의 변수를 좀 더 넓게 잡아서 문제를 풀 필요가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사실 타이밍 문제가 있다. 미쓰비시가 판결을 이행할 용의가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관련 행위자들이 제 때 조치했더라면 그걸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일본 기업이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이면서 일이 꼬였다. 이낙연 총리 방일 직전 남관표 주일대사가 뭔가 더 탄력적인 입장을 일본 측에 제시했다고 하는데, 그걸 아마 6개월 전쯤 했더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자유한국당)=과연 법률적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측 주장은 개인청구권은 살아있지만 사용할 수 없다는 데 방점이 있다.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을 맺으면서 외교보호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청구권이 살아있다는 것에 방점을 두면 오히려 문제를 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정치적 결정일 수밖에 없다.
 
▶최봉태 변호사=일본 정부는 원폭 피해자 재판에서 졌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매달 40만원씩 수당을 주고 있다. 한센병 환자에게도 1억원 가까이 보상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도 일본은 국고로 10억엔을 내놨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면 일본 정부가 돈을 주겠나. 한일협정이 있지만 인권 구제의 필요성이 생기면 일본 정부가 이를 직시해 서로 협력하면 된다. 강제동원 문제만은 안 된다는 건 모순 아닌가.
 
▶윤상현=위안부 문제 등은 1965년 협정에서 얘기되지 않은 사안들이다. 반면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서 다뤘다. 지금 와서 일본에 또다시 해결하라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강제집행 현금화까지 시간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은 의미가 없다. 한국 정부가 기금을 만들어 보상해도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사죄가 없으면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명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또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는 사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정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청구권 협정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최봉태=우선 역사를 직시해야 사죄가 나오는데, 일본은 지금 그런 단계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만 봐도 그렇다. 나고야에 전시됐던 ‘평화의 소녀상’도 보기 싫다고 철거하려는 판에 사죄할 마음이 있겠나. 일본 측에 제안한 것이 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방해하고 있는데 이를 중단하라고 했다. 일본이 협조한다면 피해자들의 자존심이 회복되기 때문에 위안부 재판을 원만하게 이끌 수 있으리라 본다.
 
▶유명환 전 외교장관=우리가 과거 두 차례 징용 피해자에 보상한 근거도 있으니 3차 보상도 국내 입법으로 가능하다. 대신 정부가 나중에 일본 기업에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는 방안도 있다.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일본 정부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2+2’(한·일 기업+정부) 틀에서 우리가 먼저 지급하고 구상권만 갖자는 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역사적·경제적·영구적인 채권자 입장에서 일본을 영원한 채무자로 남기는 구도를 만들어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최봉태=채무자를 대신해 변제하는 대위(代位)변제 조항이 있다. 문제는 국민 여론이다. 정부가 ‘굴욕적’이란 말만 안 나오게 잘 해결한다면 법률적으로는 가능하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3종 세트(강제징용 판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지소미아 종료)가 연계돼 돌아가면서 한·일 관계의 미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총리가 만나고 잠깐이긴 하지만 양국 정상이 환담도 했다. 현금화 과정이 걱정했던 것보다 시급히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도 다소 안심이 된다.  
 
◆한일 비전 포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 해법을 찾기 위해 전직 외교관 및 경제계·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이 결성한 포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정리=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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