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왼쪽 두번째)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소위에 참석해 여야 의원과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 김 위원장, 이종배 자유한국당 간사, 신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현동 기자
재정 만능주의 그만<하>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헌법에 따르면 9월3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정부 예산안은 새 회계연도 시작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도 ‘졸속 심사’가 우려된다. 과거 전력이 있어서다. 2000년 이후 국회에 제출한 19개 예산안 중 18개가 법정 처리시한을 넘겼다. 기간도 촉박하지만, 여야가 예산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부실 심사가 정례화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위 소속 한 의원은 “예산을 번갯불에 콩 볶듯 심사하다 보니 여당은 정부 원안 통과를 주장하고 야당은 시장에서 흥정하듯 정치 현안과 연계해 삭감하려다 적당한 선에서 절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깜깜이’ 심사도 고질병이다. 예결위 소위 내 일명 ‘소(小)소위’가 막판에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가 비공개로 진행하는 심사를 뜻한다. 논의 과정이 기자들에게 공개되고 속기록이 남는 소위와 달리, 기록이 남지 않는다. 예산의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올해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쪽지예산(국회의원의 개인적인 민원 예산)’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다른 의원에게 쪽지를 건넨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에는 메시지 전송 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카톡예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은 예산 관련 위원회를 상설위원회 체제로 가동한다. 심의 기간도 4~5개월(영국ㆍ독일ㆍ프랑스)에서 8개월(미국)에 이른다. 영국ㆍ캐나다는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국회ㆍ행정부가 협의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기국회 때 실시하는 국정감사부터 다른 시기로 옮겨 11월 예산 정국을 밀도 있게 끌어가야 한다”며 “특정 기간을 정해 비상설 기구로 운영하는 예결위는 상설위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 의장은 “경기 침체에 따른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예산 낭비를 둔 채로 무작정 재정부터 늘리면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낭비 예산 10조원을 찾아내 국민 혈세를 아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미국 의회는 정부 안과 완전히 다른 예산안이 나올 정도로 의회가 예산 심의를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진행한다”며“그 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을 과감하게 삭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좀 더 과감하게 예산을 ‘칼질’하고 감액ㆍ증액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에게 표로 심판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na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