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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인권 탄압의 첨병이 된 인공지능

중앙일보 2019.11.13 00:38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지영 산업 2팀장

최지영 산업 2팀장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업 센스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 가치가 높은 AI 스타트업이다. 기업가치는 올해 기준 무려 75억 달러(약 8조7300억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를 비롯해 싱가포르 테마섹, 미국 퀄컴, 중국 알리바바 등에서 투자를 받았다. 매출도 올해 9억 달러(약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4년 탕샤오어우(湯曉鷗) 홍콩중문대 정보공학과 교수와 쉬리(徐立) 박사가 창업한 지 불과 5년 만에 이룬 일이다.
 
센스타임은 본사는 홍콩에 있지만 창업자 쉬 박사가 중국 상하이 교통대 출신(박사 학위는 홍콩중문대)인 것을 비롯, 경영진 상당수가 중국 본토 출신이고, 사업 중 중국과 연관된 것이 많아 중국 기업으로 여겨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이 회사가 벌어들이는 연 매출의 약 35%는 중국 정부로부터다. 중국 전역엔 정부와 민간 포함, 미국의 3배가 넘는 1억7600만 대의 감시 카메라가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다(2016년 기준, 시장조사기관 IHS마킷). 구식인 이들 감시 카메라를 매년 일정 대수 업그레이드해야 해 센스타임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카메라뿐 아니라 결제·보안·카메라 앱에까지 센스타임의 AI 기술이 중국서 안 쓰이는 곳은 거의 없다.
 
센스타임의 성장은 ‘딥 ID’라 불리는 정확도 98.52%의 얼굴 인식 알고리즘 기술, 그리고 딥러닝 등 AI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더 큰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 경제 매거진 포브스는 “14억 명 인구라는 중국의 거대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권을 중국 정부가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AI는 분석할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똑똑해진다. 센스타임이 분석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는 4억 명, 그중 3억 명은 가입자 세계 1위의 중국 국영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 고객이다.
 
이런 센스타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센스타임을 포함한 중국 8개 기업을 화웨이와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에 올렸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더는 센스타임과 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센스타임은 미국 시장에 AI 기술을 공급할 수 없고, 무엇보다 미국 엔디비아 등 AI 분석에 필수불가결한 반도체 칩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
 
미국 정부가 센스타임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이유가 특이하다. 화웨이처럼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이어서가 아니다. “중국 서부 신장지구의 무슬림 인권 탄압에 센스타임의 AI 기술이 활용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 AI 기술을 이 기회에 꺾겠다는 미국의 견제 의도도 당연히 숨어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AI 기술이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데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글로벌 인권단체들도 이런 문제 제기를 여러 차례 미국 정부에 했다.
 
센스타임 같은 중국 AI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한국 기업들에 그간 부러움의 소재가 됐던 게 사실이다. 방대한 빅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허가해준 중국 정부의 지원이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이른바 ‘빅데이터 3법’ 에 가로막힌 한국 상황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스타임이 현재 처한 상황은 프라이버시, 인권 보호, 차별 금지라는 인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AI 기술 개발이 이제 더는 힘들어졌다는 사실도 여실히 보여준다. AI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국내 규제만 풀린다면, 인류 보편 가치를 지키면서 AI 기술을 들고 해외로 나가려는 한국 기업들엔 여러모로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최지영 산업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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