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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판사가 추천하는 법원장’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2019.11.13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백희연 사회1팀 기자

백희연 사회1팀 기자

“우리 초등학교 때 하던 반장투표랑 비슷하죠, 뭐.”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뭐냐는 묻자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답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도하는 사법부 개혁안의 하나다. 각급 법원 내 판사들에게 법원장에 걸맞은 후보자를 3명 내외로 추천받아 이 중 가장 적합한 인사를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12월 의정부지방법원과 대구지방법원에서 처음 실시됐다. 내년엔 서울동부지법과 대전지법에서도 시범실시된다.
 
첫 시범에서 제도는 반절의 성공을 거뒀다. 대구지법에서는 추천을 받은 손봉기(54·사법연수원 22기) 부장판사가 법원장으로 보임됐지만 의정부지법 판사들이 단수로 추천한 신진화 부장판사(58·29기)는 임명되지 않았다. 경력이 적어 사법행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김 대법원장은 대신 22기인 장준현 현 의정부지방법원장을 직권으로 임명했고 논란이 일었다.
 
논란을 고려해 2020년의 시범실시에는 두 가지 조건이 새로 생겨났다. 법조경력이 22년(사법연수원 27기) 이상이면서 법관으로 재직한 기간이 10년을 넘을 것. 또 반드시 복수의 법원장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 단수로 추천하면 아예 추천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도 했다.
 
세부규정은 생겼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인기투표가 되거나 이념 편향에 따라 파벌이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섞인 시선이 여전하다. 다른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비교적 숫자가 많은 젊은 판사들이 선호하는 사람들이 후보자가 되는 인기투표”라며 “젊은 판사들의 눈치를 보는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외적으로는 선거 방식을 지양하겠다고 해도 투표는 결국 인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제도를 이미 실시한 대구지법의 관계자는 “법원 내 문화가 수평적으로 바뀌었다”며 “구성원들의 뜻을 먼저 취합한 뒤 검토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법관들이 법원장을 스스로 선출한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의정부지법 관계자는 “우리는 법원장 추천제가 완벽히 적용되지 않아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인기영합주의나 파벌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건 개별 법관들의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판사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단 얘기다.
 
대구지법에서 법원장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없었다. 공약을 내세우거나, 뭘 고치겠다는 약속을 한 후보자도 없었다. 다만 판사들은 소문에 의해, 그의 판결을 보고, 혹은 자신이 원래 알던 후보자에게 투표했다. 이를 ‘개별 법관의 합리적 판단’으로 볼 수 있을까. 반면 의정부지법에서는 추천된 후보들이 정견을 발표하고 어떤 법원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내는 나름의 선거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선거 과정을 지켜본 한 판사는 이렇게 되물었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는 것과 판사가 법원장을 뽑는 게 과연 같을까요? 법원장은 판사 개개인 인사권을 갖고 있는데 내 추천을 도운 이가 누군지, 반대 후보를 도운 이가 누군지 모를 수 있을까요.” 선거제와 인기영합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과연 국민에게도 개별 법관이 모든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법원장 추천제가 판사들 사이의 반장투표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백희연 사회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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