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레이디 버드    [사진 IMDb]

레이디 버드 [사진 IMDb]

내가 나임을 참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왜 모델같은 몸매를 갖지 못했으며, 내 이름은 왜 이토록 평범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왜 이리 구린가.

미국 캘리포니아 중서부 소도시 새크라멘토에 사는 열 일곱살 크리스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뻔한 일만 벌어지는 학교생활, 지긋지긋한 이 동네를 빨리 떠나 뉴욕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다. 언젠가 날아오르겠다는 소망을 담아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까지 지어봤으나 "이상한데?"라는 반응이 돌아올뿐.

이 영화, 처음 들어보는 도시에 사는 미국 소녀의 일상인데, 볼수록 놀라게 된다. 어 신기하네? 왜 내 얘기같지?


이런 사람에게 추천
성장물을 좋아한다면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딸이라면 


이런 사람에겐 비추천
10대 때의 ‘흑역사’는 생각하기도 싫어!
미국 고등학생들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면

“내가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생겼어?”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티격태격하는 모녀. [사진 IMDb]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티격태격하는 모녀. [사진 IMDb]

영화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뭔 소리냐는 듯 시크하게 답한다. “너 새크라멘토 사람이잖아.” 엄마는 딸의 마음을 모른다. 새크라멘토는 크리스틴이 버리고 싶은 모든 것이란 사실. 지루한 이 도시의 ‘철로변 구린 쪽’ 집을 떠나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엄마가 이해해줄 리 없다. "네 주제를 알아!" 엄마의 말에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무서운 10대.

언젠가 빛나는 삶을 살고 싶은 크리스틴은 "재밌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라며 학교에서도 일을 벌인다.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겠단 계획을 세우고, 연극부 오디션을 본다. 그런데 실력은 꿈을 따르지 않고 '흑역사'만 쌓여간다. 연극부에서 만난 대니와 사귀기 시작했지만, 그가 게이란 사실이 곧 밝혀지며 절망. 몽롱한 미남 카일과 첫 경험을 시도하지만 남은 것은 또 상처다.

엄마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안녕 내 이름은 크리스틴 '레이드 버드' 맥퍼슨이라고 해.   [사진 IMDb]

안녕 내 이름은 크리스틴 '레이드 버드' 맥퍼슨이라고 해. [사진 IMDb]

“여성을 위한 <보이후드>같은 영화는 왜 없을까? 여성을 위한 <400번의 구타>는?” <프란시스 하>(2014) <매기스 플랜>(2017)등에 출연한 배우 그레타 거윅의 감독 데뷔작 <레이디 버드>는 이런 질문에 대해 감독 스스로 내놓은 대답이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고민 많은 여주인공, 멋진 남주, 얄미운 (여자) 경쟁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 등의 공식은 이 영화에 없다. 크리스틴에겐 늘 티격태격하는 엄마가 있고, 졸업파티(프롬)에 같이 갈 상대가 없어 울고 있는 절친이 있고, 너무 부러워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가까워지고 싶었던 또다른 친구가 있을뿐이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는 사춘기를 통과해 온 여성이라면 국적불문 공감할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사랑하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기대하고 상처를 입히는 사이. 프롬에 입고 갈 드레스를 함께 고르는 장면, 엄마가 "너무 핑크빛이지 않니?"라고 지적한다.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딸의 투정. "엄마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물론 너를 사랑하지" "그런데 좋아하냐고??" 엄마는 답한다. "나는 언제나 네가 최고의 모습이기를 바라" "만약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모녀의 이 미묘한 감정선을 이해할 수 있는가가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하나의 포인트다. 

어른이 되면 삶이 수월해질까?
"원래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 영혼의 단짝 줄리.  [사진 IMDb]

"원래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 영혼의 단짝 줄리. [사진 IMDb]

영화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불만인 주인공 크리스틴 뿐 아니라 주변인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실직한 아빠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엄마는 크리스틴의 학비를 벌기 위해 정신과 병원에서 야간에 일을 한다. 오빠는 명문대 UC 버클리를 졸업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마트에서 알바를 하는 상황. 이들은 모두 크리스틴이 잘 되길 바라지만, 자기 하나 챙기기도 버겁다.

친구들도 마찬가지. '전 남친' 대니는 자신이 게이임을 소문내지 말아달라며 크리스틴을 찾아와 울고, 친구 줄리는 드레스까지 준비했지만 파티에 못갔다며 "원래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라고 말한다. 크리스틴이 이들의 등을 조용히 쓸어주는 장면은 이 영화가 특별한 '성장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버리고 싶었지만 그게 나였네 
티모세 샬라메도 출연한다네.  [사진 IMDb]

티모세 샬라메도 출연한다네. [사진 IMDb]

그래서 '레이디 버드'의 비상은 성공했을까. 크리스틴은 그토록 원했던 뉴욕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만, 이 낯설고 반짝이는 도시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돈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새크라멘토" 대신 "샌프란시스코"라고 답하면서.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술을 진탕 마시고 폭주하는 크리스틴. 그리고 술에서 깨어나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엄마도 새크라멘토를 처음 운전할 때 나랑 같은 생각을 했어? 그 지겹고 당연한 풍경이 가진 왠지 모를 아름다움에 감상에 젖었었어? 이걸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리 그때 사이 별로였잖아."

지독하게 떠나고 싶었던 풍경과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지우고만 싶었던 '흑역사'에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자 망설임 없이 답한다. '레이디 버드'가 아니라 "크리스틴"이라고. 

TMI

‘팀 레이디 버드’라 불리는 그레타 거윅, 시얼샤 로넌, 티모시 샬라메가 영화 <작은 아씨들>로 다시 뭉쳤다는 소식. 미국에서 올해 크리스마스에 개봉한다고. 국내 개봉은 아직 미정.  


제목  레이디 버드(Lady Bird, 2018)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로리 멧칼프, 티모시 샬라메
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IMDb 7.4 로튼토마토 99% 에디터 꿀잼 





와칭(watchin')
 
와칭(watchin')은 중앙일보 뉴스랩이 만든 리뷰 서비스입니다. 넷플릭스 리뷰 모아놓은 곳, 믿을 만한 영드·미드·영화 추천을 찾으신다면 watching.joins.com으로 오세요. 취향이 다른 에디터들의 리뷰를 읽고, 나만의 리뷰도 남겨보세요.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