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4년 철옹성 모랄레스 몰락 뒤엔 "나만이 개혁할수 있다" 독선

중앙일보 2019.11.12 05:00
장장 13년 9개월의 장기집권을 마치고, 지난 10일(현지시간)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60) 볼리비아 대통령.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퇴장은 그다지 명예롭지 않았다.     
 
사임을 발표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신화통신=연합뉴스]

사임을 발표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열린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했던 모랄레스는 개표 과정에서 부정 개입 논란이 제기되며 거센 반발이 일자 결국 3주 만에 사의를 표했다. 미주기구(OASㆍ캐나다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가 포함된 기구)가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고, 군부마저 등을 돌리자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데뷔는 화려했다. 2005년 12월 볼리비아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안데스산맥 원주민 아이마라족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목동, 공장 노동자 등을 전전하던 그가 정치에 눈 뜨게 된 건 코카 재배업자 조합을 이끌면서다. 조합 활동으로 지역에서 입지를 다진 그는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정치적으로 더욱 성장한다.
 
이후 2002년 대선에 도전하고,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전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낸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5년 두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된다.    
 

빈민 위한 정책으로 큰 인기  

모랄레스 대통령의 대선 선언 승리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모랄레스 대통령의 대선 선언 승리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중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으로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전 대통령 등과 함께 ‘핑크타이드(Pink Tideㆍ2000년대 중남미를 휩쓴 좌파 물결)’의 주축이었던 그는 집권하자마자 천연가스를 국유화하며 자신의 노선을 확고히 했다. 이렇게 늘린 국고를 공공 서비스에 투자한 점이 큰 업적으로 꼽힌다.
 
특히 정치ㆍ경제적으로 소외돼있던 원주민·빈민을 보듬는 정책을 펼쳐 큰 사랑을 받았다. 취임 직후 자신은 물론 고위 관료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조처를 할 정도였다. BBC는 “모랄레스의 취임 이후 볼리비아의 빈곤율은 2006년 38%에서 2018년 17%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2005년 대선에서 54%의 지지율로 당선된 그가 2009년 선거에서 64%, 2014년에는 61%의 지지율로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장기집권 욕심에 국민 등 돌려

모랄레스 대통령의 대선 선언 승리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AP=연합뉴스]

모랄레스 대통령의 대선 선언 승리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AP=연합뉴스]

 
모랄레스는 그의 첫 임기 중 시행된 개헌으로 대통령의 1회 연임이 허용되자 2009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리고 확고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2014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했다. 3선 시도에 야권의 반발이 컸지만, 헌법재판소가 개헌 이후의 임기만을 따져야 한다고 결정해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기집권 야망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국민이 늘기 시작했음에도 그는 또 한 번 대통령 연임 관련 개헌을 시도했다. 열렬한 지지층, 나쁘지 않은 경제성적을 바탕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뜻은 명확했다. 2016년 2월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그러자 모랄레스 대통령은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통해서라도 출마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연임을 제한한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모랄레스는 4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대선 승리 선언 3주 만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관련기사

 
모랄레스는 거의 모든 장기집권 지도자들처럼 “내가 계획하고 있는 모든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BBC)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볼리비아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장기집권 대통령의 독선을 심판한 것이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