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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 아동·청년·농민 수당 폼 잡기 좋지만…

중앙일보 2019.11.12 00:30 종합 33면 지면보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이달 초 서울 성북구 네 모녀 죽음은 복지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가스비·전기료·건보료·월세·카드대금 등을 체납했지만 정부 그물망에 걸리지 않았다.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기초수급자·긴급복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서울시 ‘찾아가는 동사무소(찾동)’ 대상도 아니었다.
 
김모(76)씨의 기초연금 25만원이 유일한 복지였다. 파국 이유는 쇼핑몰 부채로 추정된다. 그동안 여러 차례 ‘1차 문지기’ 주민센터에 구멍이 뚫렸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김 할머니가 7월 압류 불가 기초연금 통장을 만들 때 주민센터 직원이 “생활에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그런 거 아니다”며 돌아섰다. 성북구청 이순자 팀장은 “직원이 상담하려고 조심스레 접근했지만 거절했다”며 “창피함이나 모멸감을 느낄 수 있고, 더 이상 얘기하면 실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도움 신호를 보낸다. 아직 그런 증언이 없다. 요즘 만큼 자영업이 어려운 때가 없다.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5월 의정부, 8월 의왕시, 9월 대전의 가족 자살사건 뒤에는 사업 실패와 채무가 있다. 부채 해결은 다음 문제이고, 극단적 선택을 막으려면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건강 안전망이 절실하다. 복지 안전망보다 더 절실하다. 방문간호사·독거노인생활관리사 등으로는 턱도 없다.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과 통반장, 야쿠르트 아줌마·가스검침원·아파트관리인·우체부 등 ‘접점 인력’이 생명지킴이 1차 문지기가 돼야 한다. 어려워지면 주민센터를 가장 먼저 찾는다. 여기에 잘 훈련된 심리상담사를 배치해도 좋다. 또 10세 단위로 시행하는 국가건강검진 우울증 문진 주기를 좁혀야 한다.
 
현 정부는 아동수당, 기초연금 확대, 맞춤형 보육 폐지, 문재인 케어 등에 수십조원을 쏟고 있다. 내년에 복지에 약 13% 늘려 182조원을 쓴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단체장들도 청년수당·농어민수당·기본소득 등의 현금 복지 확대에 열을 올린다. 이런 건 폼 잡기 딱 좋다. 그러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타까운 생명들이 스러지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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