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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14년 만에 불명예 퇴진,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 떤다

중앙일보 2019.11.12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한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수도 라파즈 시내에서 경찰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한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수도 라파즈 시내에서 경찰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 속에 결국 백기를 들고 불명예 퇴진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볼리비아 일간지 엘데베르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의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치른 대통령 선거의 개표 조작 의혹을 비난하는 시위가 3주째 계속되면서다. 시위 격화로 3명이 사망했다.
 

4선 연임 부정선거 시위에 백기
마두로 “미국 음모에 의한 쿠데타”

NYT는 “남미를 최근 몇 달 간 뒤흔들고 있는 정치적 불안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베네수엘라에선 마두로 대통령이 대선 조작 의혹을 받으며 후안 과이도 야당 지도자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으로 2006년 좌파의 기수로 대통령이 된 모랄레스는 초기엔 빈곤 퇴치 정책 등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4선 개헌과 언론·사법 장악 등 권력에 집착하면서 ‘독재자’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개표 조작 의혹은, 개표 중단으로 불거졌다. 중단 전엔 모랄레스 대통령과 카를로스 메사 야당 후보의 득표율 차가 7%였으나 재개 후 갑자기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에선 10%포인트 차이가 나면 당선이 확정된다. 투표를 참관한 OAS는 지난 9일 예비 보고서를 통해 “위조 서명, 대규모의 데이터 조작 증거 등 물리적인 기록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임을 발표하는 모랄레스. [로이터=연합뉴스]

사임을 발표하는 모랄레스. [로이터=연합뉴스]

대통령궁 경호 경찰과 주요 도시 경찰들이 모랄레스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9일 시위대에 합류했다. 행정수도 라파스의 대통령궁을 지키던 경찰 수십 명은 제복을 입은 채 반정부 시위대와 함께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시위 참가 이후에도 대통령궁으로 복귀하지 않고 지역 경찰본부로 향했다. 거리엔 ‘모랄레스는 독재자’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모랄레스는 마지막까지 권좌에 집착했다. 시위대를 “쿠데타 세력”으로 부르다, 경찰까지 그에게 등을 돌리자 재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 수시간 후, 퇴임으로 방향을 바꿨다.
 
한편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일제히 반정부 시위대를 규탄했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의 음모에 동지(모랄레스)가 희생됐다”며 “쿠데타를 규탄한다”고 밝혔고, 좌파 정부가 집권한 멕시코에선 모랄레스에게 망명을 제안하기도 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도 “쿠데타가 발생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은 “내 친구 모랄레스가 쿠데타 때문에 강제로 사임당했다”며 “유감”이라고 밝혔다.
 
전수진·이승호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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